[뉴노멀-미래] '25년후 붕괴론'을 이기려면 / 곽노필

곽노필 2021. 4. 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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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안으로는 억압, 밖으로는 정복으로 시작한다."

어떤 인류학자가 설파했다는 이 말은 문명의 핵심을 찌르는 듯하다.

아마도 문명이 태동했을 때부터 문명 대 반문명의 대립은 시작됐을 것이다.

처음엔 결과가 너무나 뻔한 내기로 치부됐을 테지만, 막상 2020년이 되자 코로나 팬데믹과 이상기후를 경험한 많은 이가 실제로 문명의 위기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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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1995년에 ‘2020년 문명 붕괴’를 놓고 내기를 벌인 디지털기술 전문 잡지 <와이어드>(Wired) 창립 편집장 케빈 켈리(위)와 반문명운동 이론가 커크패트릭 세일. <와이어드> 2021년 1월5일치 기사 속 이미지.

곽노필 ㅣ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문명은 안으로는 억압, 밖으로는 정복으로 시작한다.”

어떤 인류학자가 설파했다는 이 말은 문명의 핵심을 찌르는 듯하다. 문명의 기원이 인간 욕망 충족에 있음을 간명하게 표현했다. 욕망을 채운 지배층을 향한 문명 비판은 그래서 흡인력이 크다. 아마도 문명이 태동했을 때부터 문명 대 반문명의 대립은 시작됐을 것이다. 그 대립은 급격하거나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더 첨예해진다. 산업혁명 시기에 일어난 기계파괴운동 러다이트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세기 말에도 인터넷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출렁였다.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인터넷은 21세기를 앞두고 디지털 세상에 대한 무한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이면에선 컴퓨터의 인간 박탈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1995년 미국에서 두 지식인이 ‘25년 후 세상’을 놓고 판돈 1000달러의 ‘내기 예측’을 했다. 한쪽은 컴퓨터 네트워크 혁명을 기치로 내건 잡지 <와이어드> 창립 편집장 케빈 켈리, 다른 한쪽은 네오러다이트 운동에 앞장선 반문명 이론가 커크패트릭 세일이다. 세일의 저서 <미래에 대한 반란>이 계기가 됐다. 세일은 기술이 인간의 무절제를 부추겨 문명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연에 기반한 부족사회로 돌아가는 게 살길이라고 역설했다. 18세기 러다이트 운동가들이 기계를 파괴했듯, 그도 컴퓨터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의 주장과 행동이 마뜩잖았던 켈리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세일은 기술이 사람다운 노동을 빼앗았다고 공격했고, 켈리는 기술이 그동안 불가능했던 것들을 이루게 해줬다고 반격했다.

2020년 문명 붕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이냐는 켈리의 질문에 세일은 세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는 환경 재앙, 둘째는 경제 붕괴, 셋째는 빈부격차 확대다.

알다시피 문명은 붕괴하지 않았으니 내기는 켈리가 이겼다. 판정관은 그러나 켈리를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았다. 경제 붕괴는 켈리가 이겼지만, 환경 재앙은 세일의 예측이 맞았고, 빈부격차는 거의 막상막하였다고 평가했다. 세일은 인간의 창의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켈리는 기술 기업의 횡포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그는 분석했다.

처음엔 결과가 너무나 뻔한 내기로 치부됐을 테지만, 막상 2020년이 되자 코로나 팬데믹과 이상기후를 경험한 많은 이가 실제로 문명의 위기감을 느꼈다. 2021년을 기점으로 내기를 한번 더 한다면 승부가 어떻게 날까? 가속도가 붙은 기후위기는 25년 후 문명에 얼마나 큰 그림자를 드리울까?

켈리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2045년에도 문명이 붕괴하지 않는다는 데 2000달러를 걸겠다고 한다. 재생에너지 덕에 지구온난화도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낙관론은 문제를 다루는 인간의 기술적 능력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 처방하는 사후약방문에 가깝다.

근본적인 처방은 문제를 대하는 인간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세일처럼 문명의 그림자를 먼저 보는 ‘성찰의 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에너지 기술 개발에 앞서 에너지 다소비적 삶의 방향을 바꾼다면 문제가 더 쉽게 풀리지 않을까?

세가지 붕괴 지표 중 판정관을 가장 고민에 빠뜨린 건 빈부격차였다. 빈부격차가 더 악화한다면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보통 삶의 경로조차 버거운 이들을 양산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몰락의 징조 아닌가. 코로나 시국에 더 커진 계층 격차는 기술에만 의지해선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사후 해결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문제를 더는 만들지 않는 것이다. 25년 후에도 켈리의 낙관론이 이기려면 이 방법을 써야 하지 않을까?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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