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수의 삼라만상8] 생선살을 손으로 발라 숟가락에 올려준 할머니

유년 시절 목포 비릿한 향기, 유년의 골목과 그리고 주름진 할머니 손맛의 추억

전주를 다녀가며 낡고 비틀어진 골목과 오래 전 간판쟁이가 써 놓은 시장 골목의 촌스럽고 투박한 글씨, 그리고 동네 미용실에서 굽혀놓은 뽀글머리 아주머니가 내놓은 허름한 식당의 6000원짜리 백반에서도 하시절 어머니가 해준 시래기 된장국의 맛을 느낀다.

잊혀진 세월들을 시간만 되면 유년의 골목과 주름진 할망의 손에서 내 아픈 기억을 도래시킨다.

그렇게 전라도만 오면 타지역과 다르게 풍경 어디서나 사람들의 모습, 사투리, 그리고 어른이 된 내 모습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취를 찾아낸다.

기억력이 상실될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유년 시절 목포의 비릿한 향기가 몸에서 배어나 일생을 따라다닌다.

친할머니는 나를 무척 아끼셨다. 아버지는 세 분의 부인을 두셨는데,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으로 4살 때 할머니께 맡겨져서 1년간 살았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 알고 보니 목포 뒷개의 하천이 흐르는 풍경의 오래된 작은 성냥갑 같은 집들이 모여 있는 속된 말로 후진 동네였다.

이른 새벽부터 할머니는 진 밤색 옻칠을 먹인 낡은 교자상에 할아버지가 드실 아침 식사를 차려 올리셨다.

식사 전 할아버지는 조선간장을 먼저 숟가락으로 조금 찍어 입맛을 살린 후 식사를 하셨는데, 어린 나에게도 간장을 찍어 먼저 맛을 보라고 시키셨다. 아침 밥맛을 돋우는 할아버지만의 방식이셨다.

그때마다 간장이 싫다며 투정을 부리며 크게 울었는데, 밥상 머리 앞에서 사내놈이 운다며 크게 혼을 내셨다.

그런 철없이 우는 나를 달래며 할머니는 식사를 하셨는데, 아마도 둥지를 잃은 참새 새끼를 들여놓은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한번은 밖에서 놀다가 근처에 사는 작은 아버지 집에 놀러 가 저녁밥을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할머니가 늦은 밤 찾으러 오신 기억이 있다.

97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으셨어도 할머니가 "홍수 왔네요"하면 "그래? 홍수 왔어?"라며 돌아가실 때까지 그 많은 손주 중에 나를 유일하게 기억하셨다.

당신들에 손에 길러진 1년간의 세월이 계셨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 가시고 아버지 9형제 중에 막내 고모만 남으실 정도로 세월은 허무하게 가버렸다.

차가운 공기 가득한 이 새벽 그날의 할머니가 내 주신 밥상이 그리워진다. 생선살을 손으로 발라 내 조막손보다 큰 숟가락에 올려주신 유년 시절,

그날처럼 전라도의 공기는 항상 비릿한 짠물이 묻어있다. 어느 도시든 갈 때마다 시장 골목의 주름진 손으로 내놓는 국 그릇 하나에도 유년 시절 추억이 묻어난다.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나의 보답 같은 그리움이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 프로필

1992년 세영 애니메이션 총괄 제작 프로듀서
KBS 옛날 옛적에, 은비까비, 일본 합작 '나디아' 제작 프로듀서
1994~미국 할리우드 게임 JOY CINE 총감독
 경민대 만화예술과 출강.일요시사 정치삽화 '탱자가라사대' 연재
1998~ (주)프레임엔터테인먼트 슈퍼패밀리 원작, 각본, 감독
2001~2004 KBS TV시리즈 날아라 슈퍼보드 스토리보드, 감독
2004~㈜ 선우엔터테인먼트 스페이즈 힙합 덕 총감독
2005~2010 한국 KBS,중국CCTV '도야지봉' 원작 및 총감독. 상하이미디어그룹(SMEG). 상하이 술영화제작소 총감독.
2010 하문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해외심사위원
 중국 SMG 방송 TV 시리즈, '토끼방' 기획, 데모제작, 총감독
2014~한국MBC,중국CCTV  '판다랑' 원작, 각본, 총감독

웹툰협회 고문/음원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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