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정보 가치·이익 실현 따라 유무죄 갈려.. 투자금도 몰수대상 [심층기획]
유죄 판결문 8건 분석해보니
妻명의로 도로 신설 땅 사들인 공무원
"공청회서 이미 공개된 정보" 주장에도
"비공개 회의.. 매도인도 개발 몰라" 유죄
차명 매입땐 금전거래로 실소유주 판단
추징대상도 '이익→취득재물 전체' 확대
제3자 투기는 내부정보 '인지 여부' 관건
지난달 1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공언했다. 이후 정부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부동산 적폐’로 명명하며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리고 검찰과 국세청 등 관계기관을 총동원했지만, 투기사범을 적발해서 실제 처벌할 수 있기까지는 법리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4일 세계일보가 분석한 8건의 부동산 투기 사건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우선 투기에 이용한 내부 정보의 가치와 비밀 여부를 우선 판단했다. 투기에 나선 공무원들은 건설·도시계획 관련 부서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경기 남양주시의 건축녹지과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4년 6월 도시기본계획 변경에 따라 건설될 새 도로 인근 농지 1700㎡(약 514평)을 아내 명의로 샀다. A씨는 “공청회를 통해 보도됐고 도로 신설 내용도 공개돼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법령에 의해 비밀 분류 명시된 사항에 한정하지 않는다”며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비밀의 범주를 이익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지자체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회의가 비공개였던 점, 구체적인 도로계획을 A씨에게 땅을 판 매도인도 몰랐던 점 등을 근거로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지 매입은 대부분 친인척과 지인 등 명의를 내세운 차명 거래로 이뤄졌는데, 재판부는 토지 매입 자금 조달과 관련자 금전거래 등을 토대로 실소유주를 판단해 몰수·추징 결정을 내렸다. 전 대구시의원 B씨는 동료 시의원이었던 C씨 소유 임야에 도시계획도로가 개설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해당 부지 일부를 C씨에게서 매입한 혐의로 기소돼 2017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C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시세보다 싸게 넘겨받은 땅은 전부 몰수됐다. B씨는 처남과 지인 명의로 땅을 매수했지만 재판부는 B씨가 매매대금을 마련하고 계약을 주도한 점 등을 근거로 사실상 소유주가 B씨라고 판단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 등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태 후속조치로 내놓은 ‘부동산 투기근절 대책’에 대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얻은 부당이득 몰수를 소급 적용하고, 농지를 강제 처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하나같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급급해 헌법까지 무시한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9일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에 대해 즉각 강제처분 명령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한 강제처분을 위해 현행 1년인 처분 의무기간을 배제하도록 농지법도 개정하겠다고 했다.
이창훈·이희진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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