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수 캐스터의 헤드셋] "야구팬 소중하다면서" 오후 6시30분이 최선입니까

데스크 2021. 4. 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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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자료사진). ⓒ 뉴시스

프로야구 (직관을)사랑하는 평범한 서울 직장인의 사연입니다.


해도 해도 끊이지 않고 물밀 듯 밀려드는 엄청난 양의 업무로 인해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한 후 일주일이 지나고 있음에도 야구장 근처에 얼씬도 못했습니다.


이건 나의 인생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는 한 번도 야구장을 가지 못했는데 올 시즌도 못 간다면 나의 영혼은 피폐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6시 땡!!’과 함께 회사를 박차고 나갈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6시 땡하고 나간다고 해도 도저히 경기시작에 맞춰 도착할 수 없기에 상사 눈치를 보고 5분이라도 먼저 튀어 나가야겠습니다. 잠실야구장 근처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지 않는 한, 혹은 경기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늦춰지지 않는 한 지금의 경기 시작 6시30분은 대부분의 직장인에게는 불가능한 시간일겁니다.


아무튼 현재시각 5:30 서서히 짐을 챙기고 출발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퇴근 15분 전 갑자기 상사가 저를 부릅니다. 업무관련 몇 가지 이야기 할 것이 있다며. 멀쩡히 있다가 왜 이 시간에. 뒷목이 뻐근해집니다. 지금 당장 나가도 플레이볼을 함께 하지 못하는데 지금 나를 왜 부르냐고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6시40분. 짜증은 나지만 일단 야구장으로 출발. 회사 앞 마트에서 음료수 사고 배는 고프지만 야구장에서 먹을 수 없으니 패스. 헐레벌떡 야구장에 도착하니 7시45분 들어가자마자 전광판을 보니 ‘아싸 2-0!’. 우리 팀이 리드하고 있으나 어떻게 득점이 되었는지는 보질 못했으니 모르겠고.


현재는 4회말 분위기는 괜찮으니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물 한잔 마셔주고 경기에 몰입하다보니 6회초 우리팀이 수비를 합니다. 선발투수가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으니 이제부터 불펜이 지켜주면 승리. 불펜 투수가 나오자마자 ‘볼질’을 시연해주시고 연이어 안타를 맞으며 2-4 역전을 당하더니 다시 투수교체. 한 점 더 주고 간신히 이닝 종료를 하는군요.


스코어는 2-5. 슬슬 열이 오르고 뒷골이 당겨옵니다. 저녁식사도 못했으니 배는 고프고, 역전 당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 왜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스트레스 최고치입니다.


그나마 일찍 와서 우리 팀 득점 장면이라도 봤으면 덜 억울할 텐데 늦게 도착해서 그마저 보지도 못하고 역전당하는 꼴만 보고 있으니. 시간 쓰고, 돈 쓰고, 열 받고, 짜증나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도 복잡하고, 열 받아서 씩씩거리는 사이에 우리 팀은 재역전은커녕 제대로 출루 한번 못해보고 무기력하게 역전패. 내가 이 꼴 보려고 여기 있나 싶으니 머리가 한 움큼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야구장에 늦게 도착하기는 했으나 퇴근시간 전에 업무로 나와 이야기하자는 선배가 잘못한 것은 아니죠. 분명 업무시간 내에 이루어진 일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역전을 당한 투수도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잘하려 했으나 상대팀이 잘 쳐서 점수를 내고 역전을 했으니 아쉬움은 있을 뿐 비난할 문제는 절대 아니지요. 아니면 야구팬들이 많이 하는 생각. 그냥 TV로 보는 것이 나을 뻔 했나. 내가 현장 직관을 해서 패한 것은 아닌가. 괜한 자책의 마음도 들고.


바쁜 현실생활 와중에 야구 보며 힐링도 하고,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으나 뭐든 내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짜증이 솟구쳐 오릅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야구팬 중 업무 마치고 야구장에 6:30 경기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입장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물론 야구를 보기 위해 반차를 내거나 종일 휴가를 낸다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1회부터 경기를 관람하는 일은 불가능 합니다. 게다가 어느 지역이든 퇴근시간 무렵에는 거의 대부분 교통정체까지.


그럼 경기 시간을 조금만 늦춰서 시작하면 안 될까요. 지난 1년,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면서 프로야구 선수와 관계자 모두 하나같이 팬이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하면서 팬을 위해 달라지는 것은 왜 없을까요.


사실 늘 불만이었습니다. 평일 야간 경기시간. 30분만 혹은 1시간만 경기 시작시간을 늦춰 시작을 한다면 바쁜 일상 속에도 시간을 내어 경기를 보는 팬들이 처음부터 경기를 볼 수 있을텐데 말이죠.


창원NC파크 ⓒ NC다이노스

그런데 얼마 전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해 챔피언 NC 다이노스가 2년 만에 금요일 홈경기를 저녁 7시에 시작한다는군요. 30분 늦춰진 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분명 마케팅 활성화는 물론이며 홈 팬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마치고도 조금은 여유롭게 야구를 볼 수 있으며 한분의 관중이라도 더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평일 야간 경기 모두 조금만 늦춰주면 구단이나 KBO가 어떠한 어려움이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30분 혹은 1시간 딜레이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생산자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구입을 외면한다면 절대로 1등 제품이 될 수 없습니다. 소비자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 부분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 제품은 1등이 될 수 있습니다.


야구팬은 충실한 소비자입니다. 소비자들이 원합니다. 조금 여유롭게 도착해서 경기 보기를 원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승패를 떠나 플레이볼 소리를 시작으로 경기 마무리 까지 온전히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손님이 짜다면 짠 것입니다. 오늘도 끝나자마자 달려왔는데도 도착시간은 7시15분입니다.


글/임용수 캐스터

데일리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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