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박스'가 韓 수출 경쟁력 악화시킨다고?
국내엔 제조 업체 없어 '발동동'..中 업체 담합
컨박스 물적설비 포함시켜 운송주권 확보해야
"해운업계, 운임 폭등 마냥 지켜만 봐서는 안돼"
컨테이너가 발명되기 전 선박에 화물을 싣거나 내릴 땐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인부들이 직접 선박에 오르내리며 화물을 옮겼습니다. 크레인을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비효율적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화물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탓에 매번 새로운 고정법 등을 고민해야 했죠.
그런데 작년 말부터 해운 시장에 컨테이너 박스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사이 컨테이너선 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이유도 컨테이너 부족 사태가 유발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美 항만 셧다운 '컨테이너 부족' 불러와
이에 지난 3일 국내외 해운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에 모였습니다. 선장 출신의 해상법 전문가 김인현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에서 컨테이너 부족 사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살펴본 겁니다.
일본 해운센터 연구원 출신인 타쿠쇼쿠대학의 타쿠마 마쯔다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미국 등에서 하역회사가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게 된 탓에 전자 상거래 주문이 폭증하면서 국가 간 상품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이에 컨테이너 수송이 증가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주요 항만 기능이 중단 또는 축소되면서 컨테이너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는 설명입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우은정 미국 로스앤젤레스무역관이 전달 25일 작성한 '美 선박 물류 지연, 그 원인을 파헤치다'라는 글은 타쿠마 마쯔다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해줍니다. 그는 이 글에서 "화물 운송과 관련된 모든 최전방 인력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걸리면 해당 현장의 모든 업무가 올 스톱"이라며 "특히나 항구 터미널의 경우 직원 한 명이라도 코로나19 확진 시 터미널 전체가 일정 시간 폐쇄된다"고 적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터미널의 셧다운은 해당 터미널 내 수많은 정박지의 하역 및 픽업 작업뿐만 아니라 빈 컨테이너 반납을 위한 트럭 기사들의 터미널 진입까지도 중단시키기 때문에 프로세스 지연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선박 정시 도착률 75%→35%로 감소
타쿠마 마쯔다 교수는 항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컨테이너 선박의 정시 도착률도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컨테이너 선박은 국내 고속·시외버스로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매일 또는 주 2~3회 같은 시간에 출항합니다. 도착 시각도 정해져 있죠. 선박이 스케줄에 따라 항만 입출항을 정확히 지키는지 여부를 의미하는 '정시성'이 컨테이너선사의 경쟁력입니다.
타쿠마 마쯔다 교수는 "평소 75%의 정시 도착률을 보였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 35%까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도착 지연일도 2018~2019년 4일 정도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 2020년 5~6일, 2021년 6~7일에 이르렀다"며 "선박 세 척 중 두 척의 도착이 일주일이나 지연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① 최대 화물 수입국인 미국 항만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빈 컨테이너 반납이 쉽지 않다.
② 컨테이너 하역 및 빈 컨테이너의 회수가 늦어지면서 항만에 접안한 선박이 제때 출항하지 못한다.
③ 미국 항만에 새로 도착한 선박들은 항만에 접안하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 수일을 머무르는 사태가 초래된다.
④ 빈 컨테이너를 출발지로 되돌려 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⑤ 미국에 도착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선박이 출항해야 한다.
⑥ 이들 선박에 실을 컨테이너 박스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컨박스 제작' 중국 점령..韓 업체 '제로'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구하기 쉽지 않다면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컨테이너 박스 제작에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국내엔 제조 업체가 없습니다. 모두 중국에 있습니다.
이날 참석한 해양진흥공사 김정균 차장은 "원가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부족해 중국으로 공장이 이전됐다"며 "컨테이너 박스 제작업체는 모두 중국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이 이같은 상황을 틈타 담합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김 차장에 따르면 중국 컨테이너 박스 제작 시장은 상위 4개 업체의 과점체제입니다. CIMC 42%, Dongfang 27%, CXIC 15%, FUWA 7%입니다. 그는 "중국 국영선사인 COSCO가 소유한 CIMC, Dongfang을 중심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는 등 가격, 생산량 담합을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 결과 2018년 410만개이던 컨테이너 박스 공급량은 2020년 230만개로 축소됐습니다. 이에 따라 가격도 2020년 1월 1850달러에서 2021년 1월 3500달러로 두 배가량 올랐습니다.
김인현 교수는 컨테이너 박스를 '운송주권'의 관점에서 바라봤습니다. 김 교수는 "컨테이너 박스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제조할 회사가 없다"며 "95% 이상을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운송주권의 차원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나라에 적정규모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컨테이너 박스를 상법상 '물적 설비'에 포함하자는 제안을 내놨습니다. 특정 사업을 하려면 상법총칙에 따른 인적설비와 물적설비를 모두 갖춰야 합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물적설비에 포함시켜 선박과 동등한 지위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김 교수는 "상법에 물적설비의 하나로서 컨테이너 박스에 대한 정의규정을 넣고 운송인이 박스 제공의무를 부담하고 수하인이 반납의무를 부담하는 임의규정 둘 수 있다"며 "이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컨테이너 박스의 반납이 늦은 경우에 지체료 등의 수령이 법적 근거를 가지게 돼 (컨테이너 박스의) 순환이 원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자동차와 같이 등록제도도 마련해 효율적인 관리를 하고, 컨테이너 리스회사와 관리회사도 해운부대산업으로 육성하자"고도 제안했습니다.
역대급 해운 호황..방관해서만는 안되는 이유
현재 컨테이너 운송 시장은 "유례없는 역대급 초초초초호황"(실제 업계 관계자분이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적었습니다)을 맞았습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는 올해 1·4분기 평균 2765.2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수준을 보였습니다.
해운사들은 표정관리를 하면서도 내심 미소 짓고 있고, 화주들은 화물을 운송해줄 선박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타격이 큽니다. 대기업은 해운사와 장기 운송계약을 맺기 때문에 타격이 덜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운임 상승분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김인현 교수는 해운업계가 그저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제언합니다. 운송 운임이 상승한 만큼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급격하게 상승한 운송 단가가 국내 수출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국내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김 교수가 이번 선박건조금융법연구회의 주제를 컨테이너 부족 사태의 원인과 해법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일본 해운사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고려해 컨테이너 운임의 등락 폭이 커지지 않도록 일정하게 유지해왔다"며 "국내 선사들도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화주들이 해운 운송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전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총 수출금액 중 항공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35.7%로 전년 대비 5.4%p 증가했지만 해상운송 비중은 5.6%p 감소한 63.5%가 됐다"며 "항공, 철도운송을 경험한 화주들이 다시 해상 운송으로 돌아오지 않아 해상 물동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 국내 해운업계가 이 호황을 마냥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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