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주는 행복감은 '사유'에서 온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이복진 2021. 4.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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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고독처럼 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향긋한 커피를 굳이 인상을 쓰며 마실 필요는 없다.

맛은 한 잔에 담긴 커피의 실체(substance)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사유(denken)에 있다.

여기에 커피는 쓴맛과 신맛이 어우러지면서 단맛을 드러내야 하니 인상적이고 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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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선사하는 행복은 한 잔에 담긴 커피 자체가 아니라 향미를 음미하는 사유에서 생긴다. 세계적 커피 석학 션 스테이먼 박사가 커피를 테이스팅하는 모습
“커피는 고독처럼 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향긋한 커피를 굳이 인상을 쓰며 마실 필요는 없다.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누리려면 쓴맛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많다. 하지만 카페인이 커피를 마시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더욱이 카페인 때문에 커피가 쓴 것도 아니다. 디카페인 커피에서도 같은 수준의 쓴맛이 나타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쓴맛을 좌우하는 물질은 트리고넬린, 클로로제닉산 분해물질이라고 따로 있다.

어떤 맛이 나는 커피를 추구해야 할까? 마땅히 ‘단맛(sweetness)’이다. 설탕이나 우유, 크림을 넣지 않은 원두커피에서 단맛을 감지해내기란 쉽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UC데이비스연구팀이 2019년 한 잔의 커피에 단맛이 어느 정도 들어 있나 살펴봤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단맛을 유발하는 설탕(수크로스)이 인간의 혀로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양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는 달아야 한다”는 커피 전문가들의 철학이 한 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관심은 향미전문가 12명을 상대로 진행한 관능평가에 쏠렸다. 앞서 진행된 성분검사는 한마디로 “인간은 한 잔의 커피에서 단맛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관능검사 결과는 달랐다, 참가자 전원이 커피에서 단맛이 난다고 답했다. 설탕 함유량이 역치를 넘어서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단맛을 유발한 연유는 우리를 사유로 이끈다.

커피에서 단맛을 찾아낸 사람들의 표현은 다양했다. 설탕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직접적인 설명을 비롯해 “꽃 향이 난다” “캐러멜이 떠오른다” “잘 익은 살구 같다” “부드러운 질감이 메이플 시럽을 생각나게 한다” “구운 마시멜로를 먹었던 어릴 적 기억이 살아난다” 등. 향미전문가들은 단맛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다. 커피의 향기 성분들이 ‘추억의 중추’를 자극해 머릿속에서 단맛을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감각(sensation)-지각(perception)-인지(cognition)로 이어지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이다.
맛은 한 잔에 담긴 커피의 실체(substance)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사유(denken)에 있다. ‘달다’를 뜻하는 라틴어도 유래를 따져보면 감각이 아니라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라는 관념에서 나왔다. 단맛의 본질은 행복이다. 좋은 커피라면 달아야 한다는 말은, 곧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커피여야 한다는 자격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커피는 쓴맛과 신맛이 어우러지면서 단맛을 드러내야 하니 인상적이고 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가 줄리엣의 대사로 만든 ‘sweet sorrow(달콤한 슬픔)’는 커피 향미에 질서를 잡아주는 단초가 된다. 커피는 쓴맛으로 남는 비극이서는 안 된다. 사랑의 가치가 슬픔보다 달콤함에 방점이 찍혀 있듯, 참커피는 거친 쓴맛과 날카로운 신맛을 역설적으로 품어낸 찬란한 달콤함이어야 한다. 그 힘은 향미의 끝에서 사유와 함께 살아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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