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산 살인사건.. 그 남자는 왜 여자 동창생을 죽였나

김정엽 기자 2021. 4.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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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지난 6일 오후 2시 11분쯤 전북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 중턱에서 70대 여성이 숨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당시 이 여성은 낙엽에 덮여 있었고,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남성용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독자제공

지난 6일 오후 2시 11분쯤 전북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 중턱에서 70대 여성이 숨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당시 이 여성은 낙엽에 덮여 있었고,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남성용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왼쪽 팔이 낙엽 밖으로 살짝 드러나 있었는데, 인근을 지나던 등산객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자는 “마네킹인 줄 알고 낙엽을 들춰봤는데, 손이 까맣게 변해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근 방범카메라 등을 분석해 익산시 마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A(72)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용의자로 특정했다. 시신 발견 10시간 만에 A씨 집에 찾아간 경찰이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러 차례 반응하지 않자 경찰은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A씨를 긴급 체포했다. 당시 A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체 유기했지만 살인은 아니야” 황당 주장

전북 익산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쯤 살해된 피해자 B씨(73·여)와 함께 자신의 집에 왔다. 주변 방범카메라를 보면 A씨가 B씨를 강제로 데려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이날부터 5일 오전까지 집 안에만 머물렀다. 주변 이웃들에 따르면 이 기간 A씨의 집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고, 둔탁한 물건으로 때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도 들렸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2~5일 사이 A씨가 B씨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해 둔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5일 오후엔 B씨의 것으로 보이는 옷을 아파트 단지 헌옷 수거함에 버렸다. A씨는 다음날인 6일 새벽 아파트 주차장에 있던 자신의 승용차로 숨진 B씨를 옮겼다. 당시 A씨는 시신을 가방 등에 담지 않고, 바닥에 질질 끌고 나와 차량에 실은 다음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여성을 살해하고 전북 익산시 낭산면 미륵산 송전탑 헬기 착륙장 인근에 시신을 유기한 70대 A씨가 7일 0시 42분께 경찰에 체포됐다. A씨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에 경찰 출입 통제선이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그는 6일 오전 8시 30분쯤 집에서 나와 차를 몰고 15㎞쯤 떨어진 미륵산으로 향했다. 7부 능선 자락에 있는 헬기장 근처에 B씨 시신을 유기하고 낙엽으로 덮었다. 유기 당시 B씨는 자신의 옷이 아닌 남성용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시신은 버렸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직업을 목사라고 밝히면서 “B씨를 위해 기도해 주려고 집에 불렀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B씨가 숨져 있어 시신을 버렸다”고 진술했다.

◇“공무원 때도 이상한 행동...성경책 끼고 살아”

A씨 주변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주로 세무·법무 관련 부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지난 1998년 명예퇴직했다. 정년이 한참 남았지만 49세에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명예퇴직을 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정부패 등 비위 행위로 퇴직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기 전엔 월남전에 참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23년이 지났지만 함께 근무했던 공무원들은 A씨에 대한 기억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은 “특이한 행동을 많이 해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 공무원은 “1991년 초임지에서 A씨를 계장으로 모시면서 일을 했다”며 “당시엔 사무실에 칸막이가 없는 구조였는데, A씨는 자기 책상 주변에 책을 높게 쌓아놓고 주변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근무를 하면서 항상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며 “일찍 퇴직한 것도 아마 목사를 하기 위해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신을 목사라고 주장하는 A씨는 집 베란다에 LED십자가를 설치하고 현관문 앞엔 ‘OOO교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등을 걸어 놓았다./김정엽 기자

실제 A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지 자신을 목사라고 주변에 소개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집 베란다에 LED십자가를 설치하고 현관문 앞엔 ‘OOO교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등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기독교 교단에 확인한 결과 목사 명단에 A씨의 이름은 없었다. 익산시 관계자는 “A씨가 만든 교회는 등록되지 않았고, 그가 신학대를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베란다에 설치한 LED십자가가 밤에 번쩍거리면서 빛 공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익산시에도 관련 민원이 많이 들어왔지만, A씨는 십자가를 철거하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한 주민은 “밤에 주차하고 있는데 A씨가 갑자기 손전등을 내 얼굴에 비춰 깜짝 놀랐다”며 “너무 황당해서 A씨에게 항의했는데 ‘우리 교인인 줄 알았다’는 말만 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고, 이후 A씨를 보면 피해 다녔다”고 했다.

◇‘닫아버린 입’...범행 동기는 오리무중

9일 구속된 A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여전히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고 있다. 경찰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거짓말과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범행 동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중학교 동창으로 전해졌다. 범행 전까지 A씨는 아내가 있으나 따로 떨어져 혼자 살았고, B씨도 홀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 휴대전화에서 A씨와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모두 A씨가 일방적으로 B씨에게 연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경찰은 성폭력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A씨가 베란다에 설치한 LED십자가가 밤에 번쩍거리면서 빛 공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익산시에 관련 민원을 넣었지만, A씨는 십자가를 철거하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김정엽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B씨는 ‘외상성 쇼크’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B씨 몸 전체에 피멍이 발견됐고, 외상에 의해 생긴 피하 출혈이 쇼크로 이어져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검 결과가 나오자 “사이비 목사 행세를 했던 A씨가 자신만의 종교적 의식을 치르다 B씨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어 범행 동기를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A씨의 계좌 내역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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