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에서 어떤 색이 느껴지나요?

현화영 2021. 4. 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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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와 그보다 며칠 앞서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재상영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2018)까지 올봄은 흑백영화와 함께 시작했다.

자연의 여러 색이 드러나는 봄에 흑백영화라니 왠지 낭만적인 기분도 든다. 오늘은 흑백영화 더 정확하게는 ‘흑백’이라 불리는 색, 더 나아가 영화가 담아내는 여러 색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영화는 19세기 말 흑백영화로 탄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컬러영화 관련 기술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컬러영화가 대세가 되려면 반세기 이상이 필요했다. 유성영화처럼 컬러영화 역시 처음부터 모두가 반기진 않았다. 

기술과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관객과 영화인 모두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흑백영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컬러영화는 보기에 부자연스러웠고, 만들기에 부담스러웠다. 사실 초기 테크니컬러 기술이 색감을 좀 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흑백과 컬러가 섞인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중간 꿈 혹은 환상 장면인 오즈의 나라 장면이 컬러로 표현됐고,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현실 장면이 흑백으로 표현됐다. 요즘 기준으론 표현 방식이 뒤바뀐 느낌이기도 하다. 

어느새 컬러영화가 대세가 되었지만, 흑백영화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영화 다시보기가 편해져 옛 흑백영화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흑백으로 만들어진 새 영화를 보기도 한다. 

흑백영화는 단순히 흑색과 백색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흑백 논리’와 같이 양분화된 두 가지 색만이 아니라, 흑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그 많은 색이 컬러영화 만큼이나 많은 걸 표현해낸다. 색 이외의 다른 시청각적 요소들까지 결합하면 영화적 느낌과 의미는 증폭된다.     

 
‘자산어보’ 기자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흑백영화였던 전작 ‘동주’(2016)보다 ‘자산어보’가 훨씬 밝다고 했다.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을 함부로 밝게 표현할 수 없었기에 어두운 흑백을 선택했지만, ‘자산어보’에서는 더 밝고 자연스러운 흑백을 표현했다고 한다. 

단순히 컬러영화냐 흑백영화냐의 선택을 뛰어넘어, 컬러와 흑백 속에서 수많은 색과 밝기 등을 통해 감독의 다양한 의도와 고민이 담길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배우들 역시 흑백영화이기에 컬러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정 연기를 했다고 했다. 색이 좀 바뀐 것뿐인데, 표정이 완전히 달라 보일 정도라고 하니, 색이 주는 힘이 여러모로 대단한 것 같다.

‘자산어보’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물고기 해부 장면이나 요리 장면이 튀지 않는 것도 색의 힘이다. 만약 컬러영화였으면 아무래도 핏빛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자산어보’의 경우 컬러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그런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을 만큼 흑백과의 조화가 절묘하다. 관객들은 심리적인 차원으로 수많은 색감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레토’의 경우 영화 중간 중간 컬러 장면이 매우 튄다. 원색적인 색감의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특수효과, 거친 카메라 움직임, 빠른 편집 등까지 더해지면서, 뮤지컬 넘버 혹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컬러 장면이 끝날 즈음에는 어김없이 ‘이건 없던 일’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누군가의 상상일 수도 있고, 그 시절을 바라보는 감독의 상상일 수도 있다. 흑백과 컬러 장면의 이질감이 오히려 1980년대 초 구소련을 살아냈던 록 가수들, 젊은이들을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 색이 지닌 힘은 강력하다. 반드시 많은 색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다. 여러 층의 흑색과 백색, 회색이 만들어내는 흑백영화조차 영화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물리적으로도 은유적으로 다양한 색을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잠시 색에 대해 생각해보시라. 어떤 색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특정 색이 떠오른다면 그 이유도 생각해보고, 그래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느끼면서 색의 미학에 빠져보기 바란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위 기사는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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