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 '씨감자 구조작전' 취준생의 옥상에 힐링을

장윤서 2021. 4.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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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스타트업 푸마시의 '씨감자 무료 나눔' 
답답한 도시 생활에 농작물 키우기가 '힐링'
옥상에 심은 씨감자. 정은실 제공

20대 취업준비생 정은실씨는 고향 화순을 떠나 전주에서 홀로살이 중이다. 그는 며칠 전 원룸 옥상에 감자를 심었다.

화분과 삽, 장갑을 준비했다. 건물 주변의 흙을 파서 화분 바닥에 깔고 구멍을 냈다. 두 개씩 세 줄을 내 화분마다 6개의 감자를 심었다. 그 위로 다시 흙을 덮었다. 혼자 감자를 키우는 경험은 처음이지만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워 어렵지만은 않았다.

정씨는 최근 한 스타트업이 씨감자를 무료로 나눠주는 식목일 이벤트에 참여했다. 푸마시라는 이 기업은 일손이 필요한 농장주와 일자리가 필요한 도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씨감자 무료 나눔 이벤트도 클럽하우스에서

푸마시 인스타그램

푸마시의 씨감자 무료 나눔 이벤트는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클럽하우스에서 '감자보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한웅씨가 이벤트를 주도했다.

이벤트는 클럽하우스와 인스타그램에서 진행됐다. 씨감자 20kg 100명, 2kg 200명 총 300명에게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았다.

푸마시 김용현 대표는 "최근 감자 농가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주문이 갑자기 취소된 감자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외식이 줄어들자 감자 수요 역시 많이 줄었다. 원래 씨감자를 구매하기로 한 전국의 농장들이 줄줄이 주문을 취소하자 평소 푸마시를 통해 일손을 구하는 강원 인제의 한 씨감자 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팔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씨감자를 좋은 데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수 있느냐는 구조신호(SOS)였다. 푸마시와 청년들이 갈 곳 잃은 씨감자를 이용할 방법을 궁리하다 SNS 이벤트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벤트 홍보와 신청은 온라인으로 진행됐지만 배송 과정에는 많은 도움이 보태졌다.

감자를 전국 각지에 보내기 위해서 쌓아 둘 장소가 필요한데, 평소 푸마시와 관계를 맺고 있던 시장도매인연합회가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공간을 마련해 줬다. 현재 시장도매인제도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택배 배송비는 시장 상인회에서 기꺼이 부담했다.

김 대표는 "도매인 연합회 분들이나 상인회 분들 모두 이벤트 취지를 너무 공감해 주셨다"며 "SNS만으로도 가능할까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이 나서 주셔서였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감자 키우며 힐링해요"

푸마시 인스타그램

200명의 사람들이 클럽하우스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씨감자를 신청했고 선착순으로 받았다. 그중에는 정씨처럼 도시에서 감자를 키우려는 사람들도 있고,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정씨는 혼자 살면서 무언가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취업이 쉽지 않은 데다 코로나19 때문에 삶의 낙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빼고는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보내기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이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친구로부터 농작물을 키워 보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마침 씨감자 이벤트를 알게 돼서 재빨리 신청했다. 감자가 자라나는 과정을 관찰하며 활력소와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장은실씨가 받은 씨감자. 장은실 제공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40대 직장인 장은실씨도 처음으로 감자 심기에 도전한다.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그는 씨감자 20kg를 받아 지인들과 나눴다. 남은 감자는 살고 있는 아파트 1층 화단에 심으려고 한다.

장씨는 예전부터 농작물 키우기에 관심이 많았다. 직접 기를 엄두가 나지 않아 돈을 내고 대신 농작물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집에서 상추를 키워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자라 키우는 재미가 덜했다.

장씨는 왜 농작물을 직접 키우고 싶을까. 그는 "당일 바로 따거나 캔 신선한 야채를 먹고 싶어서"라고 했다. 직장인이다 보니 매일 마트를 가는 게 쉽지 않고 퇴근 뒤나 쉬는 날 야채를 미리 사두면 막상 먹을 때가 되면 금방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도 있다. 장씨는 예전에 관엽식물 스투키를 키운 경험을 들며 "잘 크면 뿌듯하고 시들면 속상하다"고 했다. 생명을 가까이 두는 것이 함께 사는 반려견에게도 좋다고 했다.

김용현 대표는 도시 사람들이 농작물 키우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농작물을 키우는 경험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면서 "농촌 먹거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짜 농부에게도 전해진 씨감자

최성용씨가 나눔 받은 씨감자를 심고 있다. 최성용 제공

씨감자 무료 나눔 이벤트는 도시에서 한번 키워볼까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20대 최성용씨는 5년 전 귀농해 경북 의성에서 자두와 복숭아 체험 농장을 하고 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해 감자 20kg 받아 텃밭에 심었다. 수확한 감자는 농장 손님에게 나눠주거나 플리마켓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또 농장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자두와 복숭아는 7~8월에 수확하는 반면 감자는 6월에 먼저 수확해 홍보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벤트에 참여한 60대 변상오씨는 농작물을 키우는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강원 화천에서 3년째 장애인여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농촌에서 농작물을 기르며 사라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농장에 다녀간 장애인들의 문제 행동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변씨는 "코로나19 이후에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벤트는 단순히 씨감자를 나눔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푸마시 측은 씨감자를 받은 이들에게 감자를 잘 기를 수 있는 농사 팁을 보낼 예정이다.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을 SNS에 업로드하면 제철 과일 보내주는 후속 이벤트도 기획 중에 있다.

씨감자에 그치지 않고 5월 강원 양구의 곰취 축제를 맞아 나눔 이벤트를 확장할 생각도 있다. 김용현 대표는 "나눔 행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 있게 보고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지방 축제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장윤서 인턴기자 chang_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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