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서 병들면 실패한 사람? 아픈 건 네 잘못이 아냐

한겨레 2021. 4. 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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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조한진희의 잘 아플 권리][토요판] 조한진희의 잘 아플 권리
⑦ 질병의 개인화
IMF 이후 정리해고 탓 회사 이직
성희롱이 있었고 불면증도 생겼다
다시 옮긴 곳도 반말·폭언·성희롱
그의 간을 손상시킨 건 무엇일까
‘질병의 개인화’는 건강이 개인의 노력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이라는 환상을 부추긴다. 고생 끝에 남는 것은 대개 질병이다. ‘고진감래’의 허구적 프레임을 깨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에게 쏟아진 ‘진단’이 아팠다. 간암 환자인 그는 수척해진 체력보다 자책감에 힘들어했다. 간암 진단 이후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수많은 진단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두어번, 잠자기 전 마시던 한캔의 맥주가 간암의 원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그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 자주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숙면을 못 해서 간 해독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장 동료는 그의 흡연이 문제였을 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모든 나쁜 생활습관을 책망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자책하는 그의 모습이 아팠다. 입에 술을 대지 않던 그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건 불면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면증은 외환위기(IMF) 사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그의 표현대로 ‘최고의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금융업계에 입사해서 꿈꾸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외환위기가 터졌고, 당시 20대 여성이던 그는 정리해고 1순위가 됐다. 퇴직금이 떨어지기 전에 급히 이직한 회사에서 성희롱이 있었고, 불면증이 시작됐다.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잘 듣지 않을 때가 많았고, 맥주 한캔에 의존하는 날이 늘었다.

질병 되는 습관 만든 건 불합리한 현실

결국 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롭게 입사한 곳은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는 콜센터였다. 이번에는 전화기 너머로 자주 반말, 폭언, 성희롱이 밀려왔다. 그래도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멸시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많은 콜센터들은 노동자들이 단시간에 스트레스를 관리하도록 흡연실을 운영하고 있고, 그의 직장도 그랬다. 그는 담배 한갑을 사면 한달을 피웠다. 퇴근 전 딱 한개비의 담배를 피우며, 한숨과 함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렸다.

음주와 흡연은 간암 발병을 높이는 위험요소로 지목된다. 그렇다면 그의 간을 손상시킨 ‘독’에 대해 여성 우선 해고, 성희롱, 욕설에 대한 현실을 누락한 채, 모든 것은 음주와 흡연 같은 ‘개인의 나쁜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는 누군가 중증의 질병에 걸렸다고 하면, 상대의 안위를 염려하는 동시에 다들 의사라도 된 듯 ‘생활습관’을 근거로 ‘진단’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누군가 거북목과 허리디스크로 고생한다고 말하면, ‘나쁜 자세’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본 정보를 떠올리며, 바른 자세와 요가를 권한다. 그의 ‘나쁜 자세’가 지적되는 동안, 남성 몸을 표준의 몸으로 두고 설계되어서 여성 몸에 잘 맞지 않는 사무용 책상과 의자의 높이, 잦은 야근을 하고 나면 요가를 할 여분의 체력이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은 사라진다.

나는 이런 현상을 ‘질병의 개인화’라고 부른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현상을 포착한 표현으로서,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는데 개인의 부주의함이나 잘못된 습관으로 질병이 왔다는 관점을 포함한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토록 서로의 질병에 대해 ‘잘못 살아서’ 생긴 것으로 ‘진단’하는 것에 익숙해졌을까?

텔레비전을 켜면 언제나, 어느 채널에서든 하고 있는 건강정보 프로그램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과 음식을 포함한 좋은 생활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질병이 있었는데, 특정한 음식을 먹고 호전됐다는 인물이 등장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그 음식이 가진 영양성분을 읊는다. 그리고 중간 광고 시간에 해당 음식에 대한 할인판매나 민간 보험 광고가 스쳐 지나간다. 그런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자주 보다 보면 습관적 사고가 형성된다. 몸이 무거우면 신이 주신 열매 노니를 안 먹어서 그런가 싶고, 눈이 침침하면 눈에 좋다는 베리류를 안 먹어서 그런가 싶어질 지경이다.

넘치는 건강정보 프로그램과 우리에게 내면화된 질병의 개인화는 ‘건강이 개인의 노력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이라는 ‘환상’을 부추긴다. 물론 일정 정도 개인의 노력으로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다. 그러나 질병에서 개인의 노력과 책임만을 비대하게 강조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휘발시킨다. 산업재해로 인한 크고 작은 질병뿐 아니라 유전자변형식품(GMO) 수입 1위 국가라거나,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라돈 침대처럼 관리되지 않는 위험물질 같은 것들 말이다.

게다가 소득이나 학력이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은 의외로 자주 간과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포용복지와 건강정책의 방향’ 보고서를 보면, 소득상위 20%의 기대수명은 85.1살, 건강수명은 72.2살이었다. 반면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은 78.6살, 건강수명은 60.9살이었다. 기대수명 차이는 6.5살, 건강수명 차이는 무려 11.3살까지 벌어졌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자살에서도 나타났는데, 65살 미만 남성 인구에서 전문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은 10만명당 24.5명이 자살했지만,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자는 10만명당 166.7명이 자살했다. 또한 소득에 따른 흡연율을 보면, 소득 상위 20%는 15.9%인 반면, 하위 20%는 26.0%였다. 이처럼 경제력과 건강은 매우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다.

개인 노력으로 건강 지킨다는 ‘환상’
‘질병은 개인 책임’ 프레임 강화해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아프면 루저? 아프면 쉬자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진 지 오래다. 그런데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환상’은 왜 이토록 완고한 것일까? 개인의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질병이 왔다? 바로 그 개인의 ‘습관’에 사회의 구조, 문화, 빈곤, 불평등이 스며 있다. 건강이 개인의 노력으로 지켜질 수 있다는 환상은 건강의 사회적 맥락과 연대성을 휘발시키고, 그 빈자리에 ‘질병은 자기관리 실패’라는 낙인을 남겼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건강조차 개인이 갖춰야 할 스펙으로 만들어버렸다. 과거에 몸이 아픈 이가 ‘불운한 사람’이었다면, 이제 아픈 사람은 ‘실패한 사람’, 이른바 ‘루저’가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고진병래(苦盡病來)로 고쳐써야 한다는 말이 돌아다닌 지 오래다. 고생 끝에 달콤한 낙을 기대하기 어렵고, 살아남기 위해 전력질주하다 보면 그 끝에 무엇이 남나. 보통은 질병이 남는다. ‘고진병래 사회’에 필요한 것은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고, 질병의 개인화를 부추기는 허구적 프레임을 깨는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서 경험하고 있듯, 질병의 개인화는 상당히 강력하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서울대 보건학과 유명순 교수팀이 진행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확진자가 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두려운 게 사회적 비난이라는 정서가 상당했다. 이는 애초 ‘질병의 개인화’ 프레임이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예상된 현상이었고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거리두기는커녕 부딪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출퇴근 시간 지하철과 아파도 쉴 수 없는 현실은 감염과 전파에 최적의 환경임을 누구나 안다. 게다가 감염 원인이나 경로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는데도 개인의 부주의함이 감염을 불러왔다는 관점은 여전히 강고하다. 이런 관점 자체를 바꿔내지 않는 한,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바이러스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힘없는 구호로 끝나기 쉽다.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아프면 쉰다는 논의가 본격화됐고, 요원해 보이던 상병수당이 내년부터 시범적으로 도입된다는 사실이다. 상병수당은 아플 때 소득을 보전해주며 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잘 아플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인 터라 더없이 반갑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어떤 제도가 잘 작동하려면 그에 따른 사회적 의식과 문화가 함께 가야 한다. 이를테면, 여성운동의 오랜 노력으로 성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들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통념에 부딪혀서 법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고,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니까 질병이 자기관리의 실패라는 프레임이 강고한 현실에서 상병수당이 도입되었을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 질병의 개인화 현상을 떠올리며 확진자에 대한 낙인이 형성될까 봐 두려웠다. 요즘은 상병수당이 제도화되더라도 눈치와 비난 속에서 실질적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어쩌나 우려스럽다.

▶ 여성, 평화, 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탈식민페미니스트. 국제 현장 연대 활동에서 건강이 손상된 뒤 투병 경험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공저로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신생 단체 다른몸들에서 활동 중이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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