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농장'의 아이들이 템스강에 던져지기까지

김형민 2021. 4. 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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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영국에선 돌봄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위탁했다. 아멜리아 다이어는 수수료만 챙기고 아이들을 죽였다. 사회가 생명을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묵인했기 때문이다.
27년간 아기 농장을 운영한 아멜리아 다이어는 템스강에 아이들을 유기했다. ⓒDailyMail 갈무리

19세기 말 영국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홍콩부터 바하마 제도까지 오대양 육대주에 펼쳐진 대영제국은 영원할 듯 빛났지.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역시 엄청난 모순에 시달리고 있었어. 19세기 중엽, 인구 250만명을 기록하며 세계 최대의 도시로 부상한 수도 런던은 특히 상태가 심각했어. 정원 이상의 승객을 실은 배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인구를 수용한 도시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지. 절망적인 가난의 공기가 만연한 가운데 어린아이들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부모들은 자식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쉽게 범죄에 물들었고, 희망의 부재는 독기의 날개를 퍼덕여 사람들을 쓰러뜨렸지.

1895년 7월8일 영국의 빈민가 이스트런던에서 에밀리 쿰스라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녀는 열세 살, 열두 살 형제를 키우는 어머니였어. 들이닥친 경찰 앞에서 그녀의 큰아들 로버트는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고 자백한다. 로버트와 동생은 어머니의 시신을 방치한 채 일주일 넘게 살았어. 되레 어머니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전에 없는 풍족함을 누리고 있었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찰에게 로버트는 이렇게 대답했어. “어머니가 도끼로 동생을 죽여버리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고된 삶에 찌들어 있던 어머니는 자식을 몸에 붙은 혹 정도로 여겼고, 그녀가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열세 살배기 형은 한 살 아래 동생의 보호자로 나서게 된 것이지. 로버트는 보기 드물게 사악하고 광적인 살인자로 정신병원에 갇힌다.

아이들은 자꾸 태어났으나 그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돌봄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넘쳐났다. 영아살해도 수시로 행해졌어. 거리의 아이들도 득실거렸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출판된 것이 1837년인데 이 소설은 1834년 제정된 ‘신 구빈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 이 법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이는 〈인구론〉을 저술한 맬서스였다. 맬서스는 부양능력도 없으면서 성욕만 발동해 아이들을 잔뜩 낳는 가난한 사람들 탓에 빈곤이 발생한다고 보았지. 즉 신 구빈법이란, 가난은 사회적 구제가 아니라 본인들의 노력과 절제에 의해 극복돼야 하며, 사회적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 위에 세워진 법이었어. 이런 상황에서 ‘능력 없는’ 그리고 ‘부모 되기를 원치 않는’ 남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피임약이나 피임 방법도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을 때이니 곳곳에서 원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들을 키울 도리가 없는 부모들은, 그리고 ‘부도덕한 사생아’를 낳아 일터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엄마들은 위에서 언급한 에밀리 쿰스처럼 아이들과 자기파괴적인 공생을 하거나 아이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이러다 보니 불운한 부모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아이들을 위탁받아 돌보다가 불임 가정이나 아이를 원하는 집에 입양 보내는 ‘아기 농장(Baby Farming)’이 꽤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떠올랐어. 간호사와 조산사로 일하던 아멜리아 다이어(1836~1896)는 남편이 죽은 뒤 1869년 이 사업에 뛰어들었어.

그녀는 지역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 “전원에 훌륭한 주택을 가진 부부가 건강한 아이를 입양합니다.” 하지만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가정을 제공하는 대신, 다이어는 수수료만 챙긴 뒤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 아이들을 잠재울 용도로 만들어진 아동용 수면제(‘엄마의 친구’라는 기막힌 별명이 있었다는구나)를 과다 복용시키기도 했고 목을 조르거나 굶겨 죽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 근처뿐 아니라 리버풀과 플리머스 등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원정을 나가 아이들을 끌어모았고 돈을 챙긴 후 목숨을 빼앗았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다이어도 한 번 덜미가 잡힐 뻔했어. 1879년 그녀가 맡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포착한 거야. 하지만 의사들은 그녀가 고의로 아이들을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방임 혐의로 노동교화형 6개월을 받게 하는 데 그쳤지.

1896년 템스강 뱃사공이 아이 시신을 발견하면서 덜미가 잡힌 아멜리아 다이어는 같은 해 교수형을 당했다. ⓒDailyMail 갈무리

거래 수단이 된 아이들

이후 다이어는 방식을 바꾸었어. 의사에게 사망진단서를 받는 수고를 덜기로 한 거야. 1895년 템스강 근처 레딩으로 이사를 한 다이어는 아이들을 죽여서 강에 유기하기 시작했어. 불행한 아이들의 주검은 쓰레기와 폐수로 새까맣던 템스강을 떠돌다가 영원한 망각의 바다로 흘러갔다. 다이어의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1896년 3월30일, 거룻배의 사공이 갈색 포장지에 싸인 기묘한 꾸러미를 주워 올리기 전까지는.

노를 휘저어 꾸러미를 건져 올린 사공은 포장지를 풀어헤치다가 기겁하며 떨어뜨리고 말았다. 인형 같은, 하지만 사람임이 분명한 아이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야. 사공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시신을 감싼 포장지를 조사하다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한다. ‘중부철도 브리스톨행’ 소인과 함께 다이어의 인적 사항을 추정할 수 있는 글귀였지.

마침내 다이어는 체포됐다. 경찰은 템스강 주변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아이들 6명의 시신을 추가로 발견했지. 이 아이들도 유기한 것이냐고 캐물었을 때 다이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죽인 애들이라면 목에 흰 끈을 감고 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경찰관들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경험을 했을 거야. 시신 6구가 모두 목에 끈을 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아기 농장’ 사업을 벌인 약 27년 동안 대관절 아이를 몇 명이나 죽였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었어. 다이어는 재판 도중 광인 행세를 하면서 사형을 모면해보려고 애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896년 교수대에서 흉측한 생을 마감했단다.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도덕성 여부로 ‘퉁’쳐버리고 아이들을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묵인했던 영국 사회에서 아멜리아 다이어라는 악마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다. 인간이 원래 선한지 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악함이란 곧 인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면서 거대해지는 법이고, 사회의 배려와 개입으로부터 단절되면서 더 추악해지게 마련이거든. 얼마 전 한국에도 다이어 같은 악마가 출현했지. 세상에 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정인이를 입양한 뒤, 아이의 췌장을 끊어버리는 고통 끝에 하늘나라로 보낸 악마 말이다. 또 2008년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 특별분양 당첨자 중 상당수가 다자녀 혜택을 위해 브로커까지 두고 허위 입양을 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거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주를, 그들의 미래와 가능성을 상실했고 또 잃어가고 있을까. 다이어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영국인들처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를 참혹하게 죽였던 로버트는 어떻게 됐을 것 같니? 워낙 어린 나이여서 처형을 면한 그는 치료감호소에서 훌륭한 치유와 돌봄을 받고 17년 만에 출소한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 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이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소년 해리 멀빌의 후견인이 돼주었고, 멀빌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 죽은 로버트의 묘비를 세워주었다고 해. 그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를 항상 기억하는 해리 멀빌과 그의 가족이(〈사악한 소년〉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엄마를 죽인 패륜아가 또 다른 누군가를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꺼내는 구원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인간이란다. 그것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 되는 이유지. 한 사회가 불행한 아이들에 대해 개입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기도 하고.

김형민 (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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