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시골 남자 서울 여자의 귀농"..김진강씨의 영농일지

김홍철 기자 2021. 4. 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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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삶을 바꾸는 것"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귀농 13년차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제2의 삶을 사고 있는 김진강씨(52)가 자신이 수확한 옥수수를 들고 환하게 웃고있다© 뉴스1

(청송=뉴스1) 김홍철 기자 =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양지길에 있는 '상하네농장'은 김진강씨(52)와 백봉영씨(50) 부부가 오손도손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언뜻 보기에 김씨는 영락없는 시골의 초등학교나 중학교 선생님 같은 느낌이지만, 귀농 13년차 베테랑 농부다.

이들 부부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근무하다 7~8년 동안 연애를 하고 20~30평의 생태텃밭 주말농장을 가꿔 오면서 귀농에 대한 꿈을 같이 키웠다. 2017년 이들은 결혼식장에서 하객들 앞에서 귀농을 선포하고 2년 후 본격적인 이들의 본격적인 귀농생활이 시작됐다.

◇귀농 운동으로 만난 '시골 농사꾼 아들과 서울 토박이 아내'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자란 김씨는 농사일이 낯설지 않았지만, 서울 토박이인 아내는 농촌 생활이 생소할 것 같아 걱정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귀농 통문'이란 계간지 발간 업무를 맡고 있던 아내는 귀농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다양한 정보와 사례를 꿰뚫고 있었다.

그래도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결혼식장 귀농 선포 후 2년여 동안을 준비해 2009년 귀농했다.

강원도 평창 출신의 딤씨의아버지가 41살에 구미로 귀농했는데, 김씨도 같은 나이에 청송으로 귀농을 한 것이다.

귀농을 결심한 후 서울 집을 전세로 내놨는데 바로 계약이 돼 본격적으로 귀농할 곳을 찾아 나섰다.

2달 정도 여유를 갖고 충북 괴산, 경북 문경·상주·영주·봉화 등 을 돌면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터전을 물색했다.

하지만 땅이 마음에 들면 집이 없었고, 집이 있으면 마음에 드는 땅이 없었다. 그러다 청송에서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고향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고 '이곳이다'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4~5년 동안 비어 있던 빈집을 1500만 원을 주고 산 뒤 1000만 원을 들여 수리했다. 농사지을 땅은 수자원 공사에서 친환경 농사를 조건으로 2000여평 점용허가도 얻었다.

김씨는 귀농하면서 '가족의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농사는 당연히 친환경이어야 했다.

20~100명의 충성스러운 소비자만 있으면 정직하게 농사짓는 한 농가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37개 상품 제조·판매…순수익 5500만원

현재 김씨의 제품을 단골로 소비하는 충성 소비자는 100여명. 대부분 지인이지만, 10년 정도 친환경 농사를 하니 한번 거래한 소비자는 계속 사 먹는다.

카페나 블로그도 운영하지만, 작물이 나오면 계절별로 문자나 카톡으로 공지해 주문을 받는다. 지금은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도 김씨의 제품을 사 먹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청송 로컬푸드 매장에 입점하고 오일장에도 나가 판매를 하고 있다.

멥쌀, 찹쌀, 들깨, 들기름, 들깻가루, 감자, 풋찰옥수수, 찰옥수수 알곡, 팝콘 옥수수, 유기농 백련잎 차, 연꽃 씨, 연잎, 연꽃, 간장, 된장, 고추장, 매실엑기스, 배추, 무, 무청 시래기, 아카시아꿀, 프로폴리스 등 37개의 상품이다.

팝콘과 연잎밥, 볶은 보리, 찰옥수수, 결명자 등은 체험상품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문화해설사 자격증을 따 틈틈이 청송을 알리고 있고 귀농 강의를 하면서 귀농 초보자들에 대한 가이드 역할도 하고 있다.

매출규모는 지난해 농사 조수익 4500만원, 체험 등의 농외 수익 1000만원, 문화관광해설사 및 강의 등으로 1000만원, 쌀·친환경 직불금 1000만원 등이며, 순수익은 5500만원 정도다. 귀농 첫해는 1100만원의 초라한 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사 온 다음날부터 감자를 심었다. 밭농사는 아무리 잘 지어도 한계가 있어 도시에 살 때보다 수입이 줄었지만, 돈 쓸 일이 많지 않아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없었다.

수확기에 농기계를 임차해야 하는데 동시에 수요가 몰리다 보니 원하는 때에 임차하기가 어려워 결국 농기계를 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농기계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농기계의 감가상각이 결국 농민들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농사 잘 짓는 것보다 농산물을 돈으로 만드는 것이 더 힘들었다. 농산물은 가격 등락이 심해 많이 생산한다고 돈이 되지 않는다. 심기만 하면 수확은 되지만 제값을 받고 팔기는 쉽지 않다.

농민들이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가공해서 장기 보관하고 냉동 보관해서 판매를 하면 어느 정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귀농 초기에는 내 인건비 따먹기라 생각했다.

6~7년 전 매실 농사를 친환경으로 지어 공판장에 가져갔더니 '홍수 출하'로 직거래로 하면 4만원 받을 수 있는 것이 5900원에 경매가가 매겨졌다.

또 직거래하면 한 통에 500원을 받을 수 있는 찰옥수수도 공판장에 가니 20원을 쳐 줘 그 뒤로는 공판장에 얼씬도 하지 않고 직거래에 매달렸다.

귀농 13년차 배테랑인 김진강씨(52)와 백봉영씨(50) 부부가 벤치형 그네를 타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뉴스1

◇ 귀농 뒤 '건강'과 '여유'…두 마리 토끼 잡아

귀농 후 가장 좋았던 점은 여러 작물을 하니까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가족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직장에 도움보다는 부담이 되는 '직장 도둑'이 될 상황이 되면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그런 정신적 압박도 없고 프리랜서 개념으로 생활해서인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지난해에는 하루에 8시간씩 대략 200일 정도 일했으니 1500시간가량 일을 한 셈이다.

올해는 일하는 시간을 1400시간으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한다.

영농일지는 첫해부터 수첩에 매일 쓰고 연말에 문서화해 활용한다. 또 작목별, 날짜별 농·작업내용, 소요 시간, 농비 등을 구분해 작성하고 있다.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귀농 당시만 해도 젊은 귀농인이라고 주민들로부터 엄청나게 환대를 받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당시 고추와 담배가 주 작물이었는데 인력이 모자라는 터에 아내와 같이 품삯을 받고 일을 하며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농사를 몰라서 처음에는 옆집 모종 내면 그다음 날 모종 내고 한 발짝씩 따라가는 농사를 짓고, 모르면 묻고 하니 어르신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10개월 정도 지나서는 동네에서 가장 젊다는 이유로 마을총무를 맡아 8년 동안 했다.

지금의 집 앞 공터도 마을에서 추천하고 다른 땅도 사라고 권해줘서 샀다.

귀농하고 난 뒤 달라진 점은 몸이 건강해졌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느긋해졌다. 좋은 차,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 내려놓고 소박하게 사는 농촌 생활에 만족한다.

농촌이라는 구조 자체가 기업형으로 농사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한도가 빤하다. 농사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파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번 것을 잘 관리하는 것, 합리적으로 관리해서 돈을 모았다고 한다.

김씨는 "개인적으로 영농일지가 큰 도움이 됐다. 행정기관의 지원과 친환경 농사를 고집한 것도 결국은 힘이 됐다"며 "6차 산업을 접목시킨 것은 앞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성공적인 귀농에 대해 조언했다.

팜 파티도 5년째하고 있는데, 70여명의 소비자가 참석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문화관광 해설사도 하고, 농사는 주로 새벽과 저녁에 짓는다. 아내는 바느질 공예품, 민화 등을 제작해서 장터에 내다 팔고 있는데, 나중에 공방을 만들 계획이다.

친환경을 기반으로 6차 산업까지 하는 게 나름 경쟁력이라 생각했다. 여러 작목을 하니 소득원이 다양화 돼서 농산물 가격 변동에 대한 리스크는 많이 줄었다.

귀농 교육은 귀농 전 생태 귀농학교를 다녔고, 도시농부 양성과정을 마쳤다. 농기계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배우고 귀농 전 생태 텃밭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많이 배웠다.

김씨 부부의 멘토는 송옥댁 남종석 어르신으로 농사나 생활적인 면에서 부모님처럼 지내고 있다.

◇"귀농은 직업이 아닌 인생을 바꾸는 것"

김씨 부부는 "귀농은 살기 위해 가는 것이고 농사는 곧 생활인 만큼, 다양한 재능을 시골에 와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농촌은 욕심만 내지 않으면, 힘과 에너지, 열정만 가지고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새로운 공간"이라고 후배 귀농인들에게 조언했다.

이어 그는 "농촌에서는 배우기 힘든, 도시에서 배울 수 있는 각종 기술 등을 준비해오면 농촌에서도 다 필요하다"며 "공무원들은 생산하는 데까지만 관여하고 판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아쉬운 점도 털어놨다.

현재의 시스템도 필요한 사람에겐 요긴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판로를 확보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을 하면서 고민했던 점에 대해 그는 "친환경이 돈 많은 사람을 위한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일반농산물과 가격 차이가 많이 없어져 다행"이라며 "농사 면적을 더 키울 생각은 없다. 평당 소출을 늘리고 판매 안정화를 시키는 것이 목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잘 파는 게 중요하다. 빚을 안정적으로 상환하는 것이 1차 목표고, 아내가 하는 공예가 성과를 내 농사 외 수입을 낼 수 있는 공방을 차리는 게 2차 목표"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청송에 농민 장터를 2019년 3월에 만들었다. 로컬푸드 마당에서 매월 2회씩 여는 농민 장터를 매주로 확대할 생각이다. 판매자와 고객·상품이 어우러져 2~3년 이내에 청송 대표 장터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귀농 13년째인 경북 청송군 진보면 양지길 상하네농장주 김진강씨(52)가 자신이 재배한 들깨를 말리기 위해 옮기고 있다.© 뉴스1

wowc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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