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지기 살리는데 80만원 쯤이야"..2030 인형병원 몰린다
#20대 후반 A씨는 중학생 때 쓰러져 후유증으로 한쪽 팔이 마비돼 병원에 1년간 입원했다. 재활 치료 선생님은 A씨에게 꿀벌 인형을 선물했다. 15년 후 A씨의 꿀벌 '친구'는 군데군데 헤지고 솜은 줄었다. A씨는 인형병원에 꿀벌 인형을 맡기고, 함께 커플 패딩까지 맞췄다. 비용은 몇십만원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15년 지기 친구를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돈이었다.
김갑연 토이테일즈 대표(61)가 소개한 인형병원 '보호자'의 사연이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5년째 인형병원을 운영중이다. 인형병원에선 인형을 환자로, 의뢰인을 보호자로, 인형 수선 과정을 수술로 빗댄다.
인형병원을 찾는 의뢰인들에게 인형은 친구와 가족과 같은 삶의 동반자 혹은 추억 그 자체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8일 방문한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토이테일즈 인형병원에는 한 B씨가 인형수술을 의뢰하고 있었다. B씨는 "추억이 담긴 인형이라 조금 겉모양이 망가졌다고 해서 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수술을 의뢰해볼까 해서 찾아왔다"고 밝혔다. 또 한 방 가득 쌓인 인형들 사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인형들이 박스에 담겨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 5000원부터 70만~80만원이 드는 경우도 있다. '부르는 게 값'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고 소재·원단 등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월 50~100건은 꾸준히 의뢰가 들어온다. 대부분 자신들의 '추억'을 지키기 위한 사연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객은 주로 20대 후반이다. 김 대표는 "20대 후반이 인형 선물을 많이 받았던 세대인 영향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17년 영업을 시작한 이후 고객수는 꾸준하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애착이 강한 분들, 조금은 예민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다"며 "내 아이(인형)가 처음처럼 혹은 자신이 원하는 상태대로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신 분들이다. 처음에 상담할 때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하길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인형병원은 서울에도 몇곳이 있지만 사업장 없이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영업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인형병원 안나'를 운영하는 안나(필명, 56)씨도 그 중 하나다.
안나씨는 "비록 카카오톡으로 의뢰를 받고 있긴 하지만 다들 소중한 추억이 있으신 듯 하다"라면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들 유품 인형 한쪽 눈이 빠진 것을 고치러 오신 고객"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키덜트' 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분석했다. 키덜트란 어린이(키드·kid)와 어른(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특히 인형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 20대가 많은 건 지금의 '키덜트' 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볼 수 있다"며 "애착인형 등을 다시 복원해서 갖고 있으려고 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인형을 고친 결과물 자체가 엄청난 의미를 지난다기 보다는 인형을 수술에 맡기는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며 "또 최근에는 취업난 등으로 20대들이 많이 힘들지 않나. 그러다보니 자신이 어린 시절 의지했던 인형들을 마치 자신의 아이인 것 처럼 돌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매경닷컴 기자 1derlan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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