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지역 상권 무너지면 우리 모두 무너진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1. 4. 1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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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음식점 유리창에 '장사하고싶다' 문구가 붙어 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부동산 동향에 따르면 이태원의 공실률은 30.2%로 서울에서 가장 높았다. 장련성 기자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코로나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작년 6월부터 시행 중인 사회적 거리 두기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4차 대유행의 공포 속에 다중 이용 시설에 대한 ‘기본 방역 수칙’이 가일층 엄격해졌다. 출입자 전원 명부 작성이 의무화되었을 뿐 아니라 음식 섭취 금지 시설도 대폭 늘었다.

이는 지난 3월 초 정부가 새로운 사회적 거리 두기 방식을 고민할 때만 해도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악화다. 그때만 해도 정부는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참여형 방역’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완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백신 접종이 본격화될 3월부터는 집합 금지나 영업 제한 등 강제 조치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신 접종의 3월 본격화는 낭설이 되고 말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고삐는 오히려 더 세게 당겨졌다. ‘자고 나니 선진국’이라며 ‘K 방역’을 뽐내던 나라가 어느새 코로나 극복 후진국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 기본 전략은 계도나 단속, 처벌 위주의 관 주도 캠페인이다. 그것의 초기 성과에 취한 나머지 백신 확보에 실기(失機)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K 방역’ 덕분에 우리가 상대적으로 최악의 사태는 모면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신규 확진자가 600~700명대로 급증한 마당에 사회적 거리 두기 방식의 긍정적 효과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애매하게 이중적인 상황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는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피로감을 넘어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집단도 있다. 바로 지역의 소상인 및 자영업자들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벼랑 끝’ 처지와 ‘줄폐업’ 행렬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자영업자의 매출액 손실률이 월평균 25%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현장 체감도를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크게 역부족으로 보인다. 밤 10시 영업 종료나 5인 이상 모임 금지는 대면(對面) 서비스 업종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경제적 타격이 물론 당면한 문제다. 그러나 그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함의 또한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거리와 동네의 상점이나 식당, 그리고 각종 여가·문화·체육시설은 일종의 사회적 공공재다. 가게 종사자, 손님, 거주민, 보행자들이 함께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생활 안전, 친교와 연대, 상호 돌봄, 사회적 활력 등은 어디까지나 지역 상권이 살아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무릇 세상이 살맛 나는 곳이 되려면 사람들 사이의 자생적·자발적 북적거림이 비공식적인 일상의 질서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1960년대 초 미국의 도시운동가 제인 제이컵스가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렇기에 불 꺼진 점포, 인적 드문 가로, 텅 빈 마을버스로 대변되는 오늘날 우리들의 도시 풍경은 알게 모르게 두렵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우리는 소상인 및 자영업자들의 숨은 사회적 가치를 너무나 잊고 살아왔다.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그들의 고통을 당연시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 눈에 안 띄게 중요한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은 힘도 별로 없다. 대형 백화점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또한 노동조합의 집회 현장에서는 예외인 듯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유독 이들만을 강하게 옥죄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적으로 표출할 창구가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본과 노동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가난한 자본가’, 곧 프티부르주아의 슬픈 운명 같은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찔끔찔끔 무한 연장이 코로나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지역의 평소 사회자본이나 축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방역과 민생경제가 양립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게 만든다. 정부는 내일 당장이라도 획일적 규제가 아닌 세심한 배려와 실질적 지원을 통해 사회자본의 뿌리인 지역 상권을 최대한 정상화하면 좋을 것이다. 생활 주변의 소상인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백신의 우선 접종권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들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들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너지는 비극의 서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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