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관람할 땐 구수하고 짭짤한 삶은 땅콩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1. 4. 1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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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19번째 남자'와 美 야구장 스낵
미국 야구영화 '불 더럼(Bull Durham)'. 국내에서는 '19번째 남자'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오리온 픽처스

‘야구 경기에 데려가 주세요. 관중 속으로 데려다 주세요. 땅콩과 크래커잭을 사주세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도 좋아요.’

대학원 원서를 미국 프로야구팀 연고지에만 넣을 만큼 메이저리그를 좋아했다. 결국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명문 브레이브스의 애틀랜타로 떠났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사먹었던 과자도 공식 찬가 ‘야구 경기에 데려가 주세요’ 가사에 등장하는 크래커잭(crackerjack)이었다. 박찬호 선수의 미국 진출 이후 적어도 4~5년은 호기심을 품었던 크래커잭인데, 이름처럼 크래커의 일종이 아니라 놀랐다. 캐러멜을 입힌 팝콘이었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에는 치어리더와 시끌벅적한 응원이 없어서 경기뿐만 아니라 식도락에도 집중이 더 잘 된다. 매체에서 전체 구장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므로 음식은 질펀한 가운데 개성을 드러내려 애쓴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 트윈스의 타깃 필드에는 고추장·마늘·꿀 양념에 버무린 ‘한국식 프라이드치킨(KFC) 샌드위치’가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코메리카 파크에서는 맥도널드의 ‘빅 맥’에 언어 유희를 가해 이름 붙인 ‘피그 맥(Pig Mac)’을 판다. 돼지 통바비큐인 ‘풀드 포크(pulled pork)’를 주 재료로 만드는 샌드위치다.

반면 좋은 성적을 위해 선수들의 식단은 최대한 건강식 위주로 꾸린다. 힘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탄수화물과 지방이 듬뿍 섞인 붉은 고기를 즐겨 먹기도 했지만, 요즘은 채소와 기름기 적은 고기, 통곡물과 요거트가 대세다. 물론 예외 없는 규칙은 없으니, 건강에 상관 없이 의식을 좇아 정해진 음식만 먹기도 한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수퍼스타 브라이스 하퍼는 경기 전 반드시 켈로그의 냉동 와플인 ‘에고’를 먹어야만 한다.

물론 특별 대우는 메이저에만 국한된다. 마이너리그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궁금하다면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誌)가 최고의 스포츠 영화로 꼽은 1988년작 ’19번째 남자[원제는 ‘불 더럼(Bull Durham)]’를 권한다. 더럼 불스는 고작 21일의 메이저 경험만으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마이너리그 팀이다. 바로 그 21일의 장본인인 포수 크래시(케빈 코스트너)는 마이너리그 통산 12년 동안 246개의 홈런을 기록한 베테랑이지만, 뜬금없이 유망주인 에비(팀 로빈스)의 멘토 노릇을 하라며 싱글 A로 트레이드된다. 데이비스는 에비에게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를 지도하는 한편, 에비와 애니(수전 서랜든)를 놓고 기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영화는 아주 넉넉하게 뿌린 로맨틱 코미디의 양념 사이로도 마이너리그의 애환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선수들은 낡은 버스를 하루 종일 타고 이동하며, 휴게소에서 차창을 통해 던져주는 샌드위치로 끼니를 대강 때운다.

“그래도 이게 다 살코기라 배가 불러요. 그런데 어머니가 보면 걱정하실 것 같기도 하네요.”

한때 미국 싱글A 리그에서 포수로 뛰던 권윤민(현 기아 타이거스 전력부장)이 다큐멘터리에서 한 말이다. 그가 경기를 마치고 이동 직전, 스티로폼 상자에 든 치킨핑거(닭 가슴살 튀김) 도시락을 서둘러 먹는 장면이었다. 다들 이렇게 어렵게 운동하며 메이저리그로 승격할 날을 꿈꾸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를 보면서 메이저리그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땅콩을 삶자. 땅콩도 미국 야구장의 유서 깊은 간식인데, 더럼 불스의 연고지인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서는 땅콩을 흔히 삶아 먹는다. 피땅콩(겉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땅콩) 1.5kg과 소금 300g을 준비한다. 큰 냄비나 솥에 물 8L와 피땅콩, 소금을 담아 불에 올린다. 펄펄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1시간 보글보글 삶는다. 적당히 식으면 건져내 껍질을 까서 먹는다. 땅콩도 땅콩이지만 국물이 구수하고 짭짤하다. 늘 볶은 것만 먹어 왔으니 삶은 땅콩이 어색할 수 있지만, 사실 땅콩이 견과류가 아닌 콩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한여름에 먹으면 특히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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