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꾼형' 진중권, '음모론형' 김어준.. 프로보커터가 주목받는 이유

김용출 2021. 4.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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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말투 김어준 '음모론형'
상대를 도발하는 진중권 '싸움꾼형'
타격감 없는 서민은 '게으르고 무능'
강용석엔 조잡한 '틈새시장형' 비판
악동행위를 일삼는 '트롤링'이 무기
'그들'을 공격하고 '우리'를 만들어내
공론장 오염.. 적극적으로 막아내야
저자 김내훈씨는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프로보커터’들이 공동체의 공론장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왼쪽부터)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강용석 전 의원, 서민 단국대 교수 등을 보수 및 진보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프로보커터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프로보커터/김내훈/서해문집/1만5000원

주목과 관심에 중독된 21세 청년이 미국에서 아동 성착취 영상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텍사스에 거주하는 14세 소녀의 알몸 사진을 수천 개 주고받았다는 혐의까지 더해지면서 고국인 싱가포르로 추방될 위기에 내몰렸다.

아모스 이(Amos Yee). 불과 10대의 나이에 ‘천재 영화인’으로 비상했고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영웅으로 칭송받다가 하루아침에 소아성애자의 대변인으로 추락한 뒤 이젠 구속상태에서 운명의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2011년, 아모스 이는 3분짜리 단편영화를 공개했다가 한 언론매체의 영화제 최우수단편영화상을 거머쥐며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 유튜버가 된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콘텐츠가 없어 자기파멸적인 어그로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사망을 조롱하는가 하면 리콴유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성관계를 갖는 짜깁기 그림을 올려 파문이 일으켰다.

강한 조롱과 혐오 행위로 당국에 체포됐지만 전 세계 유튜버들 사이에선 ‘연성 독재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하는 순교자’, ‘서슬 퍼런 체제에 맞서 선을 넘나드는 노빠구 인생’으로 영웅화되며 석방됐다. 체포와 석방이 이어지면서 그의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원천 봉쇄됐다.

아모스 이는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이주한 뒤에도 강제성만 없다면 소아성애도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몰락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유튜버들이 그를 손절하기 시작했고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그의 계정을 강제 폐쇄됐다.
김내훈/서해문집/1만5000원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포퓰리즘을 공부하는 저자 김내훈씨는 책 ‘프로보커터’에서 아모스 이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프로보커터(Provocateur)’가 공동체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프로보커터라는 말은 ‘(특정한) 반응을 유발하다’ ‘화나게 하다, 도발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영어 단어 ‘provoke’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발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나쁜 관종(관심종자)’쯤 될 터다.

저자는 프로보커터의 탄생에는 주목과 관심이 돈으로 환전되고 인터넷 조회 수가 장사가 되는 ‘주목경제’가 자리한다고 분석한다. 마이클 골드하버가 고안한 주목경제의 개념은 무한정한 디지털 세상에서 유한적인 주목이라는 ‘상품’을 전제한다.

주목 경제에선 주목과 관심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보지 않는 공익적 무플보다는 특정 계층이 열광하는 악플을 추구하게 되고, 더 우스꽝스럽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수시로 ‘선’을 넘게 되고, ‘사이다 발언’이 각광받으며, 전복과 위반 등 악동 행위를 일삼는 ‘트롤링’이 무기가 된다.

특히 프로보커터들은 ‘혐오의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별짓기 프레임을 활용해 ‘그들’을 혐오하고 공격해 ‘우리’를 만들어낸다고 분석한다. 초연결성을 바탕으로 전문가와 관료 등 엘리트 집단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닌 원인과 대상으로 쉽게 전락하게 된다는 거다.

저자는 그러면서 사회적 인물에 대한 모욕적 언사를 던지는 ‘싸움꾼형 프로보커터’, 음모론을 바탕으로 도발하는 ‘음모론적 프로보커터’, 싸움꾼과 음모론자에 나쁜 의미의 관종이 결합한 ‘삼위일체형 프로보커터’ 세 유형이 있다고 구분한다. 이에 따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서민 단국대 교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을 보수 및 진보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프로보커터로 규정하고 비판한다.

먼저 진 전 교수를 ‘싸움꾼형 프로보커터’라고 규정한다. 즉 진중권은 2019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반민주당 논객으로 부상했다며 ①싸가지 없는 발언으로 상대에 도발하고 ②이에 격동한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③적의 적은 나의 친구, 자연스럽게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분석한다. 그를 논객으로 키운 건 지식인의 어젠다가 아닌 퍼포먼스였다며 지금은 바닥을 보이며 억지와 악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며 깐죽대는 것도 심리적 여유가 받쳐줄 때 가능한 도발 기술이다.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은 진중권에게는 억지와 악만 남았다. 프로보커터의 말기 증상이다.”

TBS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에 대해선 ‘음모론적-예언가형 프로보커터’라고 말한다. 저잣거리의 언어와 말투로 ‘무학의 통찰’과 ‘공정한 편파’로 포장했지만, 우리 편만 결집하고 상대 진영과 중도를 배제하는 ‘정치 종족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다만 김어준은 보수 진영에서 일으킨 도발을 제압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며 앞으로도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봤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2019년부터 반문(재인) 논객으로 호명됐다며 패러디와 반전의 장인에서 타격감 없이 ‘기승전문빠’ 비판으로 전락한, ‘게으르거나 무능한 프로보커터’라고 평했다.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해선 ‘조잡한 틈새시장형 프로보커터’라고 꼬집었다.

저자는 결국 시민들이 프로보커터가 조장하고 있는 공론장의 오염을 경계하고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말과 글을 인용해 온 언론에 대해서도 “프로보커터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며 경각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좌우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보커터가 정치권에 행사하는 영향력과 관계없이 이들의 언어가 보통 사람들의 언어에 스며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혐오의 언어가 일상 언어와 뒤섞이는 순간 프로보커터는 언제든 득세하여 한국사회의 담론 전반을 주도하고 어지럽힐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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