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仙은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심장을 가슴 밖에 내걸었다"
시간의 압력
샤리쥔 지음 |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512쪽 | 2만5000원
‘북쪽 모래섬에 신이 강림하셨는데(제자강혜북저·帝子降兮北渚)/ 아득히 멀어 보이지 않으니 나를 시름겹게 하네(목묘묘혜수여·目渺渺兮愁予)/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뇨뇨혜추풍·嫋嫋兮秋風)/ 동정호에 파도 일고 나뭇잎 떨어지네(동정파혜목엽하·洞庭波兮木葉下).’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이 쓴 ‘초사(楚辭)’의 ‘상부인(湘夫人)’이란 시다.
저자 샤리쥔(夏立君)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가볍게 읊조려보기만 해도 특이한 자연의 소리 같은 미감이 한없이 얼굴을 덮친다. 꽃 같은 생명과 구름 같은 신령, 깊은 정감의 초목을 통해 사람과 신이 서로 의지한다…. 애수와 비애의 정서가 깊은 남방 문화와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굴원의 일생에 대해 탐구한 그는 사람들이 단오절에 굴원을 기렸던 일을 되짚고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통해 보면 민중이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은 것은 정말 선전과 교육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미려한 문장 속에서 깊은 사색의 흔적이 현철하게 나타나는 중국 에세이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산문가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이 책으로 2018년 루쉰문학상 같은 중국 문학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그는 굴원, 도잠, 이백 같은 시인부터 조조, 이사, 상앙 같은 정치가에 이르는 역사 인물을 긴 호흡으로 되살리며 사색한다. ‘삼국지연의’의 빌런인 조조의 경우 “무수한 격류와 험난한 여울을 건너면서 정치가의 인격에 시인의 인격으로 보조한 인물”이라 평하고, 시선(詩仙) 이백에 대해선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심장을 가슴 밖에 내걸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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