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3] 가난은 전염병과 같다

황석희 영화 번역가 2021. 4.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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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verty is like disease.
서부 개척시대는 지나간 과거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어야 하는 생존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빚더미에 앉게 된 형제 토비(크리스 파인·왼쪽)와 태너(벤 포스터)는 어머니의 텍사스 농장을 압류하려는 은행을 털기 시작하고, 곧 은퇴를 앞둔 보안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가 이들을 추적한다. '시카리오'의 테일러 셰리던이 각본을 쓴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2016).

미국의 희곡 작가 유진 오닐은 가난을 이렇게 말했다.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치명적인 질병(the most deadly and prevalent of all diseases).”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2016)의 주인공 토비 하워드, 태너 하워드 형제는 저 질병을 중증으로 앓고 있다. 같은 병을 앓던 어머니는 몸을 갉아먹는 또 다른 병에 걸렸으나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허름한 판잣집 병상에서 죽는다. 가난이란 병은 가장 무서운 합병증을 유발한다. 가난병에 걸리면 아무리 가벼운 병에 걸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치명적인 병으로 번지고 만다.

하워드 형제는 가난이란 병을 벗어날 방법으로 은행 강도를 택한다. 주택 대출금 상환을 핑계로 헐값에 어머니의 농장을 삼키려고 하는 은행에 얌전히 집을 넘길 순 없다. 동생 토비는 경비가 허술한 작은 마을의 은행을 털어 대출 상환금만 마련하려 했지만 형 태너는 범행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리자 욕심을 부려 은행을 몇 곳 더 털기로 한다. 하지만 가난이란 병을 이런 고육지책으로 뚝딱 고칠 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들은 마커스 해밀턴이라는 베테랑 보안관과 운명적 혈전을 벌이기에 이른다.

천신만고 끝에 혼자 살아남아 어머니의 농장을 지켜낸 토비는 결판을 내려고 찾아온 해밀턴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난은 전염병 같아서 대를 이어 전해지며 사람을 괴롭히죠(It’s like a disease... passing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ecomes a sickness).” 자식들에게 가난이란 병을 물려줄 순 없다는 얘기다.

유진 오닐의 말처럼 가난은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치명적인 질병인 동시에 토비의 말처럼 대를 이어 전해지는 유전병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재는 것조차 사치인 생존 영역에선 “지옥이 찾아오든 파도가 밀려오든(Hell or High Water)” 그저 앞만 보고 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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