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 두 가지
[경향신문]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유일한 바람이라면 1번과 2번 바깥에서 제대로 된 개혁을 지향했던 후보와 선본들이 선거 이후를 잘 도모하는 것이지만, 양당 구도의 정치판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마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찍지는 않았지만, 첫 정권교체 순간에 맛본 ‘숨통’의 느낌을 아직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시도 우려했고 내내 증명되듯, 없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권 교체’가 아닌 ‘집권정당의 교체’일 뿐이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두 보수정당이 발원지가 되어 몰아칠 또 한바탕의 돌풍이 미리 시끄럽게 여겨진다. 특히 전 지구적 생태위기의 긴 터널 속에서조차 부동산과 개발을 놓고 정치권이 앞장서 충동질할 탐욕의 아수라장이 빤히 보인다. 그러니 더 살아볼 생각이라면 내가 즐길 수 있는 터전이나 더 잘 가꾸고 확장해야겠다는 작심만 다시 한다. 그래서 정치의 끝자락 혹은 그 너머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 두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질문 1) “…(구미에서) 올라와서는 다시 서울역 연세빌딩 있는 그 자리로 돌아왔지요. 일하면서 모은 돈을 식당에 맡겨 놓고, 나도 묵고 친구들이랑 동생들도 사주고. 원래 그라던 데입니다, 거기가. 내가 일하러 갔다 오면 거기 사람들한테 돈 주고 밥 사주듯이, 다른 사람이 갔다 오면 나한테 또 돈도 주고 묵을 것도 사주고. 그래가 다 씁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법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법은 없지만, 그 안에서는 자체에서 그 좋은 법을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거기 있다 보면 돈은 안 떨어져요. 막걸리 값 안 떨어지고, 담뱃값 안 떨어지고요. 그러믄서 있다가 일하고 싶으면 하고. 그때는 일이 많았어요, 노가다 판이. 그래 나가면 6만원 정도는 벌었거든요. 그래가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작년부터 11명의 필진이 서울역 건너편 양동 쪽방촌 주민들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고 있다. 위 대목은 64세인 한 남성 주민의 56세 즈음 (2013년) 생애 대목을 정리한 글이다. 은행나무가 많아 한여름 그늘이 좋던 거리에서 노숙하다 지인의 주선으로 구미 돼지농장에서 1년간 일해 나름 한몫의 돈을 벌어서, 다시 그 거리로 돌아와 그 사람들과 함께 노숙하고 있다. 저 대목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고 보는가는, 읽는 사람들의 내면과 사는 이유의 반영이다. ‘노숙자들은 저래서 안 돼!’라는 흔한 시선부터 다양한 판단들이 있을 테다. 나는 저 경지를 살지 못했고 이후로도 못할 듯하다. 마저 몰락해서 그 지경에 닿는다 해도, 일단 빠져나오고 나서 들락거릴 생각을 할 거다.
질문 2) 홈리스 현장에서 오래 활동해온 사람들 말로 올해 들어 양동 쪽방촌에서 유달리 부고(訃告)가 많단다. 노숙인이나 쪽방 주민들의 죽음은 ‘공영장례’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여러 이유로 시신인수를 포기해서다. (공영장례 관련 ‘(사)나눔과나눔’ 누리집 http://goodnanum.or.kr/) 외람된 말이지만 시간만 되면 자주 가고 싶을 만큼 나는 공영장례가 좋다. 순전히 개인적으로라면 사람에 관한 내 관심은 죽음까지다. 죽음 직후부터는 의례이고, 모든 의례 특히 가진 자들의 의례는 많은 속임수를 담고 있다. 공영장례는 고인에 대한 정보와 관계에서 속임수를 부릴 여지가 없다. 빈곤과 단절과 고립사 등 고인들의 흔한 생애내력에 대해 사망 후에나 달랑 따라붙은 내가 슬픔 어쩌고 할 일도 아니다. 족과 돈과 연줄들이 치른 내 엄마의 번잡한 “호상”에서 느꼈던 공분을, 어떤 상관도 없이 뒤늦게나마 함께하려는 마음들만 모이는 단출한 공영장례에서 위로받는다. 온전히 끊어낼 수 없는 족과의 거리 두기가 내겐 생애의 지난한 과제인데, 시신의 속수무책에 ‘사람 노릇’ 타령을 씌워 그 지난함을 말짱 도루묵이 되게 하는 것은 결단코 싫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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