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막대 아이스크림 같은 빌라, 왜 튀게 지었을까?
투룸 중 하나 부엌으로도 사용
샤워실·변기 분리해 화장실 쾌적
볕 쬘 수 있는 테라스도 만들어
내부 고민, 살기 좋은 집 구현
국민 40% 사는 빌라촌 환경 열악
제도·시스템적으로 수준 높여야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독특한 외관과 달리, 건물의 용도는 흔하다. 4층 규모의 다가구주택(대지면적 166.3㎡, 연면적 291.60㎡), 통상 말하는 빌라 건물이다. ‘단단집’으로 불리는 이 집의 2~4층엔 모두 5가구가 산다. 1층은 여느 집처럼 주차장과 상가 하나가 있다. 그런데 이 튀는 건물을 설계한 서재원 건축가(aoa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외관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대체 왜 이렇게 지었을까.
층마다 계단을 가운데 두고 대칭형으로 두 집을 뒀다. 못 쓰는 면적을 최대한 줄였다. 여기까지는 소위 ‘집 장사’들이 짓는 임대용 다가구 건물과 접근법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문고리 개수’부터다. 통상 투룸의 경우 전용면적 33㎡에 방 두 개가 먼저 자리 잡고, 남는 애매한 공간에 부엌과 화장실을 넣는다. 임대를 위한 방 두 개에 중점을 두느라 싱크대도 작다.
단단집, 못 쓰는 면적 최대한 줄여
투룸 중 방 하나를 차지한 부엌의 싱크대 길이는 냉장고를 빼고서 2.1m다. 개수대와 인덕션 사이 조리대도 60㎝가량 된다. 전용 84㎡(30평대) 아파트와 비슷하다. 거실 한쪽에는 붙박이 옷장 공간과 화장실이 있는데 샤워실과 변기가 분리돼 있다. 변기 옆에서 샤워하느라 물이 다 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쾌적한 동선이 확보된 단단집의 투룸 면적은 35㎡(약 10.6평). 작은 공간을 매만지고 제자리를 알맞게 찾아준 결과, 작지 않은 집이 됐다. 서 건축가는 “임대 공간만 생각하며 빨리 찍어내듯 만드는 빌라에서 살다 보면 작은 불편함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빌라 문화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단단집도 경제성만을 쫓으면 쉽게 만들 수 없는 결과다. 건축주 즉, 개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조형성과 쾌적함을 위해 공간을 꽉 채우지 않았다. 입주민이 볕 쬘 수 있는 테라스도 만들었다. 그 결과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은 175.35%로, 최대한도인 200%에 못 미친다. 대신 월세는 인근 비슷한 크기의 투룸 대비 비싸게 받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 40%가 단독주택을 포함한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에서 산다. 아파트 단지 밖 소위 ‘빌라촌’이라 불리는 이 동네에서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하거나,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길 기다리며 살아간다.
김현석 건축가(준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주거정책을 말할 때 모두가 아파트만 이야기하니 단지 밖 동네는 점점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며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주거환경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적인 방안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건축사이자 프랑스 건축사이기도 한 그는 과거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 리옹’에서 일하며 한국과 글로벌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와 함께 빌라 동네를 살펴봤다.
프랑스 파리의 움직임은 빠르다. 파리지앵의 자동차 소유가 줄어들면서 도시계획도 이에 맞춰 변했다. 2015년 파리시는 집을 새로 지을 때 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도시계획을 바꿨다. 원래 100㎡당 주차 1대를 넣는 것이 의무였다. 김 소장은 “2013년 기준으로 62% 이상의 세대가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고, 가구 수 기준으로 절반 이상이 1인 가구인데다가 공용주차장도 충분하다보니 집집마다 주차장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용적률 높여도 일조권 제한 탓 못 지어
이에 앞서 오래된 건물이 많은 도시다 보니 주차 문제는 늘 골치였다. 옛 건물을 들어 올려 1층에 주차장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파리시는 숨은 공간을 찾아냈다. 광장이나 공원 아래,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 길가에 거주자 우선 주차공간도 만들었는데, 자리를 지정하는 한국과 달리 구역을 지정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주차하도록 했다. 공간을 더 유연하게 써서 더 많은 차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조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3종으로 나뉘어 있는 일반주거지역을 통폐합해서 용적률 300%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용적률을 높여도 작은 필지의 주거지에서는 높게 지을 수 없다. 1970년대 초에 만든 일조권 사선 제한 탓이다.
건축법에 따라 전용·일반 주거지역에서 건물을 지을 때 정북 방향으로 옆집 경계선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한다. 높이 9m 이하는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m, 9m 초과 부분은 해당 높이의 2분의 1 이상 띄워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 즉 3층까지는 반듯이 짓다가 4층부터 건물이 계단처럼 꺾이게 된다.
뒷집에 볕이 들게 한 조치다. 그런데 만약 땅의 두 면이 북쪽을 보고 있는 경우는 어떨까. 정남향으로 땅이 반듯하게 구획되지 못한 서울 강북에서 흔하다. 이 경우 두 면 모두 일조권 사선 제한을 받아 신축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집 지을 면적이 안 나와서다. 이러니 용적률을 아무리 높여줘도 소용없다. 김 건축가는 “빌라의 층고가 유독 낮은 것도 이 일조권 사선 제한 탓”이라며 “빌라에 적용되는 건축법, 주차장법, 지구단위계획 등 법적인 시스템 자체가 좋은 건축가가 참여하더라도 좋은 주거양식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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