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 VS "범죄자" 양대 건설노조 갈등 도 넘어..사사건건 충돌

신성철 2021. 4. 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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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격해지는 민주노총-한국노총 건설노조 충돌
양측 입장 들어봤지만..아예 돌아선 듯 대화 의지 단절
 
"하나, 둘, 셋! 밀어!"

지난달 24일 한국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강원도 원주시의 한 공사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영상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당일 촬영됐다는 이 영상은 민주노총 건설 노조원 100여명이 몰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한노총 조합원들에게 몸싸움을 걸었고, 곧 발차기와 주먹이 난무하는 패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쩍쩍’ 뺨 때리는 소리가 너무 적나라해 원본대로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모습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양대 노총 조합원 간 싸움이 있었다는 제보가 여럿 들어왔습니다. 그 중 상당수는 민노총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게 한노총 측 하소연입니다. 폭행 결과 경기 파주에서 한노총 근로자가 주먹에 맞아 어금니를 다쳤고, 전북 전주에선 한노총 소속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가 강제로 끌려내려진 뒤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민노총 건설노조는 일방적 폭행이었다는 한노총의 주장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원주에선 “단체 싸움이 일어나기 전 우리 조합원이 먼저 맞았다”고 반박했고, 파주 사례는 “혼자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한노총 조합원들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1월 인천시 서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상대 조합원들을 폭행한 혐의로 한노총 조합원들이 지난달 31일 무더기 입건됐습니다. 한노총 건설노조는 “(민노총에게) 일자리만 뺏기고 일방적인 가해자로 몰린 억울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심각해진 일자리 경쟁에 서로 적대하는 건설 노동자

양대 노총 건설근로자 간 일어난 물리적 충돌은 그 원인을 파악해보면 천편일률적입니다. 일자리를 놓고 양대 건설노조가 서로 자기 조합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다툰 데서 비롯된 겁니다. 한노총 건설노조에서 올해 들어 이 같은 일자리 분쟁이 ‘전례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현장에선 양대 노총 간 파멸의 위기가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습니다.

한노총은 지난 2월 내부적으로 작성한 ‘민노총 건설노조의 해고 강요 범죄에 대한 보고서’에서 2019년∼2020년 초까지 민노총의 투쟁 목적이 ‘채용 강요’였다면, 작년 말부터는 ‘해고 강요’로 격화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소속 조합원을 일정 비율 채용하라고 건설업체를 압박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계약을 맺은 한노총 근로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꿰차겠다며 강요한다는 전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터에서 소속 노총이 다른 건설 근로자 간 서로 적대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소속과 상관없이 같은 노가다밥 먹는 사람끼리 형, 동생 하며 교류했지만, 이제는 밥도 노조를 구분해서 따로 먹는다”는 게 한노총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소속 노조에서 이른바 ‘프락치’로 오해받을까 친분 있는 상대 노조원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도 귀띔했습니다.

◆일자리는 제자리 또는 줄어드는데 조합원 수는 해마다 3배 가까이 늘어

양대 노총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꼽자면 안정적 일자리를 얻으려 조합 가입자는 크게 늘어난데 반해 일감은 비슷하거나 줄어든 탓입니다.

한노총 건설노조만 해도 조합원 수가 2018년 2만1000명, 2019년 6만1400명, 2020년 17만1000명으로 해마다 3배 가까이 늘었다고 집계됩니다.

민노총 건설산업연맹의 지난해 조합원 수는 10만 명가량으로 추산되는데, 최근 몇 년간 1만명 이상 늘어났다는 전언입니다.

이에 반해 대한건설협회의 ‘2020년 주요 건설통계’를 보면 전년 대비 건축착공 면적은 2018년 5.7%, 2019년 9.5% 각각 줄었습니다. 작년에는 12.8% 늘긴 했지만 실제 면적(1억 2370만㎡)은 조합원 수가 훨씬 적었던 2017년 수준(1억 2780만1000㎡)에도 못 미쳤습니다.

◆양대노총 대화 의지도 없어...대책 시급

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사와 결탁한 한노총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벼릅니다. 외국인 불법 채용을 막기 위해 사측과 싸우고 있는 자신과 달리 한노총이 이를 외면하고 일자리만 챙긴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한노총 건설노조는 ‘불법이라고 주장해서 근로계약을 파기시켜 놓고 그 자리를 결국 민노총이 차지한다’고 맞섰습니다.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기 위해 싸운다는 민노총 주장이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시각입니다.

양대 노총은 현 상황을 ‘노노갈등’으로 보는 것부터 매우 불쾌하게 여겨 화해는 요원해 보였습니다.

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한노총이 노노갈등의 ‘노’에 해당하는 의문”이라고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한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도 “노노갈등 수준은 한참 전에 벗어났다”며 “갈등이 아니라 가해자 민노총을 어떻게 처벌하고 피해자 한노총을 어떻게 구제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양대 노총 건설노조는 상대를 “어용”, “범죄자”로 부르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노총끼리 알아서 풀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지금처럼 서로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공사 현장에서 일정이 마비되고 몸싸움으로 다치는 근로자가 속출하는 악순환이 쉽게 진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글·영상=신성철 기자 ssc@segye.com

※ 영상에서 양대 노총의 생생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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