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쓴 중국 역사 속 인물평전 [책과 삶]
[경향신문]
시간의 압력
샤리쥔 지음·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 512쪽 | 2만5000원
초나라 시인 굴원은 억울했다. 나라가 위태로운데 어리석은 군주는 굴원을 등용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수많은 문인·지식인들이 그러했듯 굴원 역시 군주를 ‘미인’으로 상상해 구애하는 시를 썼다. 물론 그 사랑은 보답받지 못했다.
조조는 간교하고 대담한 전략을 구사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드러운 정감을 가진 시인이기도 했다. “술잔 앞에 놓고 풍악 듣나니/ 인생이 얼마나 되랴?/ 마치 아침 이슬처럼/ 가버린 날 너무 많아 괴롭구나!”라고 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도잠(도연명)은 전원에서의 은둔을 노래한 시로 유명하지만, 세속의 공명을 거부한 적은 없었다. 은사(隱士)가 되더라도 생계는 꾸릴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41세까지 벼슬에서 얻은 것이 없자, 그제야 도잠은 포기한 뒤 전원으로 향했다. 정치의 풍파에서 벗어나 있으니 안전했으나, 죽는 날까지 가난했다.
이백은 즉흥적이고 천부적인 시인이었다. 황제는 이백의 시를 높게 평가해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곧 이백에게 정치적 재능이 없음을 알아챘다. 황제는 점잖게 이백에게 많은 황금을 주며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이백은 이후 은밀한 원망을 담은 규원시(閨怨詩)와 사부시(思婦詩)로 황궁을 그리워했다.
<시간의 압력>은 중국 산문작가인 샤리쥔이 역사 인물을 탐구하고 평가한 책이다. 학술서라기보다는 인물평전에 가깝다. 시간의 압력을 이겨낸 뒤 현대에까지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인물들이다. 50대가 넘어서야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 샤리쥔은 “마침내 시간을 대부분 스스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럴싸한 작품을 못 내면 소모해버린 목숨 앞에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 다짐에 값하는 책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원숭이들이 사과처럼 떨어졌다” 기록적 폭염에 집단 폐사
- [공실수렁 시즌2] 7000개 ‘생숙 공동묘지’된 반달섬의 재앙···수요 없는 공급은 누가 만들었나
- [전문] ‘음주운전 시인’ 김호중, 은퇴 아닌 복귀 시사···“돌아오겠다”
- 여당 조해진 “채 상병 특검법 당론으로 반대? 그건 입틀막”
- ‘시럽급여 사태’ 또?…반복수급 때 최대 50% 삭감 추진
- 인건비 줄이려 ‘공휴일은 휴무일’ 꼼수 규칙…법원서 제동
- 직구 금지, 대통령 몰랐다?···야권 “대통령 패싱인가, 꼬리 자르기인가”
- ‘VIP 격노’ 있었나…특검법 핵심은 ‘대통령실 개입’ 의혹 규명
- 미술관의 아이돌 정우철,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힙한 예술가’는?
- [단독] 지자체 수요 반영한 맞춤형 임대주택 도입···올 하반기 공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