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다시 소환된 '활동가 지침서'..패배한 정치인들에게 요긴한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화제의 책]

문학수 선임기자 2021. 4. 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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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운동은 이렇게
마이클 왈저 지음·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 232쪽 | 1만3000원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감옥에 갇혀 <무엇을 할 것인가>(1863)라는 소설을 썼다. 혁명을 꿈꾸던 러시아 청년들을 격동시켰던 이 소설을 블라디미르 레닌도 읽었다. 단순히 읽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보물처럼 여겼다. 그래서 소설이 나온 지 40년 되던 해, 레닌도 동일한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혁명의 대업을 이루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서술한 이 저작은 당시 젊은 혁명가들에게 보내는 ‘운동의 지침서’였다.

이 책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연상케 한다. 저자 마이클 왈저는 미국 정치평론가다.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으며 30여년간 정치평론지 ‘디센트’의 편집인으로 활약했다. 레닌의 책이 그렇듯이, 이 책도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실제적 지침서다. “진지하면서도 단순명쾌하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화려한 수사도 없다”는 점도 레닌의 저작과 흡사하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는 운동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올해 87세의 저자는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서문에서 “미국이 캄보디아를 폭격할 당시에 (이 책을) 썼다”면서 “그때까지 10년간에 걸쳐 격렬하게 진행된 여러 정치 활동의 경험과 성찰을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기본적 토대는 저자가 겪었던 1960년대의 운동 경험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50여년 만에 다시 책을 펴내면서 “모든 종류의 시민운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침서”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들, 그리고 이따금씩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다시금 정의한다.

실제 책은 쉽고 소박한 언어로 운동의 원칙과 활동가들의 지침을 제시한다. 예컨대 저자는 활동가들에게 “(자신에게 날아오는) 비방과 모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치적 이견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하라”고 조언한다. 패거리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공적 논쟁과 사적 음모 간의 균형을 후자 쪽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연설에 대한 조언도 내놓는다. “지적 탁월함이나 말재주가 아니라, 소박하게 말하기, 단순한 언어, 느린 속도가 좋다. 지나치게 흥분하는 연설은 최악이다. 중립적 입장을 가진 청중에게는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도 당부한다. “활동가들은 운동을 위협이나 무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운동의 고립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 떠넘길 수 있겠는가?”

1960년대 후반, 운동권 일부의 급진화와 내부 분열을 바라보면서 저자가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언급도 있다. “전투적 급진주의자들, 분파주의자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을 전위라고 생각한다. 아마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한 전위이다. 어떤 인민도 그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끊임없이 영광을 얻으려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이 우리를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롭고 조금 더 정의로우며 조금 더 민주적인 사회로 데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활동가들의 지적 오만과 모험주의, 중산층 지식인과 급진파 청년들의 반정치적 태도, 지루함, 좌절감, 미디어의 유혹, 운동 상층부에서 여성을 소외시키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강조하는 다원주의는 특별히 눈에 띄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시민들이 늘 정치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며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자질에 따라 자기 삶을 결정하도록 보장하는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 책이 50여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다. 저자의 제자인 미키 모건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교사였다. 기후변화에 대해 항의하는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제자들에게 옛 스승의 책 일부를 복사해 읽혔더니 “왜 우리는 이런 책을 모르고 있었던 거죠?”라며 다시 출간해주길 희망했다. 여든이 훌쩍 넘어서도 손녀와 함께 반(反)트럼프 시위에 나가길 주저하지 않는 노인은 기꺼이 재출간을 승락하고 서문까지 새로 썼다. 이번에 한국어판을 내놓으면서는 ‘한국어판 서문’을 또 별도로 썼다. 한국의 활동가들, 나아가 ‘패배한 정치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어쩌면 이 책 어딘가에 요긴한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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