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과학 -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오창은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마음에 드는 낡은 것보다 나빠도 새로운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독일 작가 브레히트가 한 말이다. 진보는 미래를 향한 내디딤이고, 나쁜 것을 좋게 만들려는 유토피아적 꿈이다. 시작은 ‘나빠도 새로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새롭고 좋은 것’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윤리다.
1992년 6월20일, 새롭지만 나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화/과학’이 창간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발간 작업을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문화이론 전문지’를 표방했다.
이 매체는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문화비평이라는 글쓰기 장르를 만들었고, ‘문화사회’와 ‘노동거부’라는 급진적 담론으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어느덧, 발행인 강내희에서 2대 편집인 심광현으로, 다시 3대 편집인 이동연을 거쳐 제4대 편집인인 이광석·박현선 체제로 들어섰다.
그간 ‘정동과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2.0’ ‘플랫폼 자본주의’ ‘인공지능 자본주의’ 같은 이론 영역뿐만 아니라, ‘미투정치’ ‘86세대’와 같은 첨예한 현실 문제에도 적극 대응했다.
문학연구자이자 문화연구자인 나는 ‘문화/과학’을 통해 그람시와 알튀세르, 발터 베냐민과 질 들뢰즈를 공부했다. 세계 문화연구의 흐름, 낯선 이론에 관용적 태도 등도 배웠다. ‘문화/과학’을 읽으며 학문적 연대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됐다. 학문적 연대는 끊임없는 관점의 조정과 삶의 감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뤄진다. 연대는 마음만으로가 아니라, 함께 분위기를 만드는 정서적 어울림의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 정서적 연대가 혼자서는 못할 실천의 길에 함께 접어들도록 이끌어준다.
‘문화/과학’은 무뎌지려는 나를 ‘나빠도 새로운 것’으로 이끈다. 내게 이론적 실천의 현장을 펼쳐보여주고, 끊임없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의제를 끄집어내주는 ‘연구의 창’ 역할을 해주는 매체가 ‘문화/과학’이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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