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와 아이들의 '반전·충격' 심리게임..중드 '나쁜 아이들'

한겨레 2021. 4.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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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나쁜 아이들> 스틸컷.

넋 놓고 보다가는 소리를 지를 만큼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인·장모를 모시고 산을 오르는 다정한 사위. 산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어드리려고 하다가 그대로 어르신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실족사로 처리된 완전범죄. 그러나 봉우리의 반대편, 우연히 놀러 온 아이들의 카메라에 살인 장면이 찍혔다. 고아원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아이들. 대담하게 살인범에게 돈을 요구한다.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아이치이에서 공개된 <나쁜 아이들>(원제 ‘은비적각락’)이다. 티빙과 웨이브에는 우리나라 <채널에이>에서 방송된 버전으로, 왓챠에는 원본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같이 산에 갈래?”라는 말이 유행했다. “라면 먹고 갈래?”가 뭔가 두근두근한 말이라면 “같이 산에 갈래?”는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다.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매회 충격적으로 끝나서 다음 편을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 없다. 중국 최고의 추리작가 쯔진천이 쓴 2014년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며,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작가진이 이 드라마의 12회 구성과 매회 마지막 장면을 정해줬다고 한다. 또한 음악, 조명, 배경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계산된 놀라운 연출력을 보인다. 모범생 차오양의 집은 답답한 짙은 녹색이지만, 차오양의 어머니가 나오는 장면엔 욕망을 상징하는 빨간색 물건들이 보인다. 살인자 장둥성의 공간은 우울한 파란색 분위기이고, 경찰 아저씨는 따뜻한 노란색 배경에서 등장한다. 드라마에 숨겨놓은 수많은 복선과 단서를 찾아 추측하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를 연출한 신솽 감독은 1982년생으로 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연출은 독학으로 배웠고, <나쁜 아이들>이 데뷔작이다. 음악인 출신이라 그런지 드라마 음악이 매우 훌륭하다. 특히 매회 다른 엔딩곡은 보너스 트랙처럼 각 회차의 내용을 정리해준다. 마지막 회 엔딩곡 ‘흰 배’는 감독이 직접 작사·작곡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살인자와 위험한 심리게임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수학 선생님인 살인자에게 그저 “더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만 하려 한다. 그러나 경고를 하러 간 자리에서 더 큰 사건이 일어나고 자신들의 정체까지 노출되고 만다. 아이들이 위험한 도박을 할수록 살인자와 그에 맞서는 모범생 차오양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둘 다 수학을 좋아하고 데카르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가정이 파탄 났고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강한 것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 다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드라마를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꼬집으면서도 중국 정부의 검열을 영리하게 피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나 국가주의는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을 통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과 비슷한 느낌이다.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없는 아이들은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가난과 빈부격차, 가정의 붕괴와 따돌림, 폭력과 마약처럼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2천여명의 아역배우 중에서 최종 캐스팅된 3명은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 무엇보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나쁜 아이들> 스틸컷.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이들이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우리 동요 ‘반달’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된다. 드라마의 중요한 순간마다 총 3번 나오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죽는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라는 가사가 묘한 느낌을 준다. ‘반달’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다. 이후 1950년 중국 인민예술극원인 조선족 김철남이 번안하여 중국에서도 부르게 되었고, 중국 교과서에도 ‘하얀 쪽배’(小白船)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의 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조선족 민요로 소개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방금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반달’을 검색해봤더니 1924년 윤극영이 작곡한 우리나라 동요이며 어떻게 중국에 전해졌는지 정확히 나와 있다. 물론 현재까지는 말이다.

드라마에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에 대한 동화가 나온다. 데카르트는 공주와 사랑에 빠졌고, 이를 알게 된 왕이 대로하여 데카르트를 유배 보내, 거기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 뒤 데카르트의 편지를 받은 공주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잔혹동화도 존재한다. 실제로는 데카르트가 공주의 배신으로 죽었고, 공주는 평생 데카르트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과연 어느 쪽 동화를 믿을 것인지 질문한다.

과연 아이들은 살인자를 응징하고 진실을 밝힐까, 아니면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말까? 데카르트의 동화를 당신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이 드라마의 엔딩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여러모로 잘 만든 드라마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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