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역차별 취업난 내로남불..20대들, 조목조목 뿔났다
"지도부 독선에 침묵 않을것"
◆ 확 바뀐 정치지형 (上) ◆
진보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20대가 4·7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몰표를 던지며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여야 대결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20대 유권자들의 여야 지지율은 지난해 총선에서 남성은 여당에 47.7%, 여성은 63.6%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지지율이 각각 22.2%, 44.0%로 20%포인트가량 줄었다. 20대 분노 표심은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됐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총선 이후 1년간 지속되며 단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내년 대선까지 하나의 추세로 굳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정책, 청년실업 대책 등에 지지를 보냈던 20대 유권자들이 불공정 이슈와 취업난에 대한 불만, 내 집 마련 꿈 좌절과 젠더(성차별) 이슈에 대한 실망이 맞물리면서 정치 성향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작년 총선 직후인 2020년 5월 40%를 기록했던 20대의 여당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해 올해 3월 28%까지 떨어졌다. 집권 여당은 이 같은 추세를 애써 무시했을 뿐 사실상 20대의 여당 이탈 추세가 진행돼온 셈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대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9일 더불어민주당 2030 의원들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1년간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정부와 지도부 판단에 의존했다"며 "당의 관행과 기득권 구조, 국민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오만과 독선에 더 이상 눈감거나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민주당 초선 의원 81명도 '더민주초선모임(더민초)'을 조직하고 "지난 10개월간 충분히 소신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며 "당의 운영 방식, 업무 관행, 태도 등에 대해 철저히 점검하고 당 지도부 구성의 변화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같은 선언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없을 경우 20대 유권자들의 분노 표심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특히 20대 유권자 중에서도 남녀 계층 표심이 분화된 게 정치 지형 변화의 새로운 변수다.
[문재용 기자 / 박제완 기자 / 최예빈 기자]
20대, 대선 태풍의 눈으로
"앞에선 친서민·친여성 외치며
성추행 저지르는 모습에 좌절"
20대 후반 '집 문제' 고민인데
LH사태·부동산 폭등에 "심판"
미래세대 조기포섭 필요한 與野
소통 강화 나섰지만…셈법 복잡
20대 유권자는 통상 진보 정당에 유리한 지지 계층으로 분류돼 왔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야당에 몰표를 주며 여당 참패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특히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에 지지를 보냈던 이들 20대 계층은 지난해 총선 이후 불거진 공정 이슈와 내로남불 행태,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취업난, 그리고 내 집 마련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현실에 크게 실망해 '여당 응징 계층'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
20대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세대라는 점은 정치권이 풀어야 할 난제다. 20대는 수능 n수생,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으로 세분화돼 있다.
자녀 입시 비리로 요약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겪은 20대 중반의 경우 기존 더불어민주당이 지니고 있던 공정성과 '깨끗한 이미지'를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이 이번 투표 결과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박 모씨(24)는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면서 그 이유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촛불집회와 함께 등장한 정권인 만큼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는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등을 겪으면서 실망감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LH 사태에 대해서도 "집을 살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만큼 부동산 문제 자체보다는 공정성 문제로 다가왔다"고 평했다.
20대 남녀의 성향 차이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의 오 시장 지지율은 30%포인트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20대 여성들은 민주당에 성범죄 귀책사유가 있다고 해도 국민의힘 남성 후보보다는 여성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한편 남성 후보와 성비위,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하지 않아 제3당 후보로 흘러간 20대 여성 표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윤 모씨(26)는 "성범죄 차원에서 민주당이 심판은 받아야 하는 것도 맞지만 오 시장도 성범죄라는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정의당 등 제3당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15%는 기본소득당, 여성의당 등 여성 의제와 젠더 이슈를 내세운 소수정당에 투표했다.
'20대의 반란'을 받아든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내에선 공정·정의에 민감한 청년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성이 쏟아졌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는 청년들과 접점을 넓혀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9일 도종환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첫 회의에서 "온라인·오프라인 소통 채널을 모두 가동해 못다 전하신 민심을 듣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여당은 불공정 문제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공정과 정의 초석을 세우기 위해 내부부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성난 청년 민심을 달래기 위한 부동산 대책 마련에도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선거 승리를 받아든 국민의힘 역시 안심하기는 어렵다는 표정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정말 우리가 20대 표심을 끌어안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고민했다"면서 "당장 우리 당에는 청년 조직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인데, 20대의 표심이 1년 새 어떻게 바뀔지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성승훈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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