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 않던 이란, 억류 95일만에 韓선박·선장 풀어준 이유

노민호 기자 2021. 4. 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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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백스 등 '美승인' 받은 '韓성의' 인정..이란핵합의 영향 관측도
지난 1월4일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역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 선박과 선장이 9일 억류가 해제됐다. 사진은 한국케미호.(외교부 제공)2021.4.9/뉴스1 © News1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지난 1월4일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역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 선박과 선장이 억류 95일만인 9일 석방된 가운데 억류 해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 측은 당초 나포 이유로 주장했던 '환경오염'에 대한 증거를 아직 우리 정부에 제출하지 않았고 또한 국내 동결자금 문제도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다.

◇이란, 코백스 퍼실리티 등 '美승인' 받은 '韓성의' 인정한 듯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동결자금 문제 해결 노력이 이란에게도 전해졌고 최종 억류 해제 결정에 긍정적 영향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동결자금 문제는 한국과 이란 양측 모두 나포 배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양측 모두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국내에 묶여있는 이란의 원유수출 대금 약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또한 우리 정부는 동결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해왔으며 특히 제재 특별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이란이 백신을 확보한 사례를 들 수 있다. 한국과 이란 양국은 나포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와 관련해 논의를 이어 왔다.

코백스는 선입금을 내고 개발이 완료되는 백신 공급을 보장받는 방식이다. 당초 정부는 이란의 선입금 부분을 국내 동결자금을 활용해 코백스에 전달하려 했다. 실제 미국의 승인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달러화 환전 과정에서 미국 은행을 거치게 되면, 다시 동결될 것을 이란 측이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는 미국한테 라이센스(허가)를 받았다"며 "하지만 미국 은행을 거치는 것을 (이란이) 싫다고 해서 우리 돈(국내 동결자금)이 아닌 다른 돈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란의 동결자금은 일본 등 곳곳에 있는데 이 중 미국 은행을 경유하지 않아도 되는 루트가 있었던 것 같다"며 "미국의 라이센스를 받기가 정말 힘들다. 일본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라이센스를 우리는 받았으니 일련의 노력을 이란 측이 평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동결자금을 활용한 유엔 분담금 대납 가능성이 커진 것도 선박과 선장 석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란은 유엔 분담금 미납으로 투표권이 정지됐고 이를 한국이 대납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이 투표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약 1600만달러(약 180억원)를 납부해야 한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 분담금 대납 건이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미국의) 라이센스만 받으면 바로 송금하면 된다"며 "동결자금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과 EU, 중국, 러시아 외교관들이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그랜드 호텔에서 이란 핵합의 복원 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란핵합의(JCPOA) 영향 관측도

최근 이란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해 당사국들과 협상을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이란과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핵합의 당사국 대표단은 오스트리아 빈의 한 호텔에서 만나 지난 2018년 미국의 탈퇴로 사실상 붕괴된 핵합의 복원을 논의했다. 미국 대표단은 회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연합(EU)측 대표단과 회담을 하며 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다.

회담 후 미국과 이란의 발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건설적' '실용적'이었다고 평가했고 이란은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JCPOA가 진전되면 동결자금 문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유관국과 협의했다"며 "미국과 이란의 JCPOA 복귀 및 상응하는 조치를 논의하고 있는데 언론을 보면 관련해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밖에 정부의 지속적인 소통과 국회 차원의 노력도 선박과 선장의 억류해제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평가다. 외교부에 따르면 1주일에 통상 3~4번은 이란 측과 접촉해왔다고 한다.

정부는 억류 초기부터 실무대표단을 이란 현지에 파견했으며,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현지에서 이란 측 정부 관계자들과 대면 협의를 가진 바 있다. 또한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이란 의회 외교위원장과의 통화 등 국회 외교 채널이 동시에 가동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특히 조만간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란을 직접 찾을 예정인 가운데 우리 측의 '성의'를 이란 측이 감안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뉴스1

◇외교 성과라지만..일각선 韓외교력에 의문부호

한편 일각에서는 100일 가까이 우리 선박과 선장이 이란에 억류돼 있었던 것은 성과라고 치부할 수 없다며 한국의 외교력에 의문부호를 붙이기도 한다.

참고로 이란이 제3국 선박을 나포한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019년 7월19일 발생한 영국의 '스테나 임페로호'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이란은 불법 항해 혐의로 나포했다가 70일 만에 해당 선박을 풀어줬다.

이에 앞서 이란은 지난 2013년 8월13일에도 인도의 'MT데슈샨티호'를 환경오염 혐의로 나포했다가 23일만에 석방한 바 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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