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모았던 금융권 노조 추천 이사, 용두사미 되나

신다은 2021. 4. 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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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장이 약속했던
기업은행 노조도 실패
IBK기업은행 사옥 전경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관심을 모았던 금융권 노조 추천 이사제가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그 동안 꾸준히 도입을 시도한 케이비(KB)국민은행 등 민간 은행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 등 국책 은행마저도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윤종원 행장, 약속해놓고도…

9일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전날인 8일 금융위원회가 기업은행 사외이사로 노조 추천 이사를 받지 않은 데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이사제 도입을 약속해 놓고도 기업은행 노조를 기만했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지난해 2월 취임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기업은행 노조에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윤 행장은 ‘정권 낙하산’의 취임을 반대한다며 출근을 저지하는 기업 노조에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윤 행장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은 위원장도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구두로 약속했고 강기정 청와대 전 정무수석도 따로 만나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러고선 이제 와 없던 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은행장이 후보를 제청하면 금융위가 임면한다. 국회 법 개정이 필요한 노동이사제나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는 민간은행과 달리 정부 의지만 있다면 노조 추천 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전날인 8일 금융위는 윤 행장이 제청한 후보 4명 가운데 기존 사외이사 1명을 재선임하고 사측이 추천한 후보 1명을 신규 선임하기로 해, 노조 추천 후보는 택하지 않았다. 금융위 쪽은 인사와 관련된 사항이라며 별도로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은행 쪽에는 ‘노조가 추천한 후보가 사외이사 후보로서 적절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업은행 노조는 하승수 변호사 등 3명을 은행에 추천했다.

 수출입은행도 지난해 ‘노조 추천’ 입성 실패

국책은행의 노조 추천 이사제가 좌절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사외이사 임명 구조가 기업은행과 비슷한 수출입은행도 지난해 노조 추천 이사 후보를 포함한 인원을 임명권자인 기획재정부에 제청했으나 기재부가 노조 추천 이사 대신 기재부 관료 출신 인사를 뽑았다. 지난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노조 추천 인사가 아예 제청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노조 추천 이사제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재부는 지난해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공공기관 노조 쪽과 노조 추천 이사제 등 도입에 노력할 것을 합의할 때도 ‘현행법에 따라, 적합한 인사를 추천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해 자격 시비를 내세워 노조 추천 인사가 불수용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임면권을 가진 홍남기 기재부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취임 이후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 과도기적 제도인 노조 추천 이사제보다는 법 개정 사안인 노동이사제 위주로 논의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홍 장관은 근로자가 이사 결정에 관여할 수 없고 참관만 하는 ‘근로자 참관 이사제’를 시범 과제로 시행하겠다고도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관료들 입장에선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제도가 아니면 앞서 도입했다가 괜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고 책 잡히길 원치 않을 테고 노동 이사제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재계, ‘경영 간섭’ 주장 되풀이

이같은 미온적인 태도의 배경엔 ‘노조 추천 이사가 근로자 이익을 지나치게 대변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깔려 있다. 금융권 노조는 제도화를 추진한 2017년부터 노조 추천 이사제의 목적이 ‘획일화된 이사회 구성을 바꾸고 이사회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강조했지만, 경영자단체는 ‘적대적 노사 관계 속에서 노조 편을 들 것’이라거나 ‘사실상 경영 간섭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꾸준히 나타냈고 정부도 이런 입장에 일부 동의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19년 “은행은 근로자 임금, 복지 등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양호해 금융권에서 먼저 도입할 필요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등 노조 추천 이사를 ‘직원 이익 대변 창구’로 간주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한 서울시 산하기관 노동이사들의 활동 내역을 보면 이런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직원들이 여러 차례 건의했던 기관 내부 업무 처리 과정을 개선하거나 △사업 수행에 따른 인원과 공간 배치 등에 의견을 내고 △기관 평가 결과를 직원 일부 공개에서 전체 공개로 바꾸는 등 기관의 투명성 제고에 기여한 점 등이 성과로 꼽혀서다.(최홍기 고려대 법학연구원)

 정부 ‘낙하산’ 인사에 밀려

정부가 국책은행 사외이사를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채우려다 보니 노조 추천 이사가 뒤로 밀린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수출입은행 노조 추천 이사가 가지 못한 자리는 기재부 관료 출신인 유복환 전 세계은행 이사가 앉았다. 금융권 노조 관계자는 “챙겨줘야 할 인사가 대기하고 있는데 노조 추천 인사에 먼저 자리를 줄 리도 없고, 준다고 해도 앞으로의 인사권에 방해를 받을까 봐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엔 금융 경력이 없는 관료 출신 이사(감사 포함)가 각각 두 명이다.

금융노조는 사외이사 추천 기회가 오는 대로 계속 도전할 예정이다. 수출입은행은 다음 달 사외이사 1명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이사를 추천한다. 신현호 수출입은행 노조위원장은 “기업은행이 불발되긴 했지만 수출입은행은 예정대로 추진하겠다. 될 때까지 노조 추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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