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0원' 페북 설립자 저커버그, 왜 버는 만큼 세금 안내나

서정원 2021. 4. 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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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 노정태 옮김 / 부키 펴냄 / 1만9800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페이스북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세금을 얼마나 낼까? 페이스북은 매년 수백억 달러 순이익을 벌어들이지만, 이 회사 주식을 5분의 1 넘게 들고 있는 저커버그의 배당소득세는 0원이다. 페이스북은 배당을 하지 않는 무배당 주식이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연봉도 1달러만 받기 때문에 근로소득세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저커버그가 소유하고 있는 페이스북에 부과할 수 있는 법인세가 많은 것도 아니다. 페이스북은 케이맨제도 등 법인세율이 낮은 곳에 법인을 설립한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이곳으로 돌리기 때문에 법인세를 내지 않거나 아주 적게 낸다. 저커버그는 수백억 달러 재산을 보유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지만 이런 연유로 그가 현재 실질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세금은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

신간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는 엄청난 부자들이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미국의 왜곡된 조세제도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경제학 교수이자 공정성장센터 소장인 이매뉴얼 사에즈 교수가 동료 게이브리얼 저크먼 교수와 집필한 책이다. 사에즈 교수는 '21세기 자본'으로 알려진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학교 교수와 더불어 미국 소득 불평등 역사에 대해 깊게 연구해온 불평등 분야 전문가다.

책은 페이스북뿐 아니라 구글·화이자·나이키·씨티그룹 등 수많은 다국적 회사들이 조세 도피처로 수익을 이전함으로써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이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에서 관리하는 통계 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내는 이익의 60% 가까이가 세율이 낮은 외국으로 빠져나가 그 나라 법인의 이익으로 기록되고 있다. 심지어 다국적 기업이 미국 외 지역에서 얻은 이익 중에는 '무국적 항목'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다. 유령회사가 어딘가에 설립돼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자들은 다양한 수법으로 세금 부담을 회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근로 소득엔 예외 없이 세금이 부과돼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우선 미국에서는 모든 임금소득자 급여에서 15.3%의 세금을 원천징수한다. 12.4%는 사회보장세로, 2.9%는 메디케어 재정을 위한 세금으로 나간다. 높은 수준의 소비세도 가난한 사람들에겐 큰 부담이다. 미국에는 부가가치세가 없고, 매출에 부과하는 매출세와 특정 물품에 부과하는 내국소비세(excise tax)가 있는데 저자는 소비세가 재화를 위주로 부과돼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게 되는 점을 지적한다. 오페라 관람을 즐기거나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즉 부유한 계층이 소비할 때 매출세는 없지만, 옷을 사고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등 가난한 계층이 소비할 때 매출세가 따라붙는 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하위 10%는 소득의 10% 이상을 매출세와 내국소비세로 내고 있는 반면, 상위 10%의 소득에서 이 항목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연방소득세의 부과 구조도 부자들에게 유리하다. 최근 십수 년간 연방소득세는 노동과 자본에 골고루 부과되는 종합세에서 벗어나,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우호적인 성격을 지니는 세금으로 탈바꿈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2003년 이후 1년 이상 보유한 주식 배당금에 부과되는 연방소득세의 상한 세율은 20%인 반면 근로소득세의 최고 세율은 37%에 달한다.

원래부터 미국의 세금 체계가 이렇지는 않았다. 1930년대 이래 반세기 동안 최고 소득구간의 세율은 90%였고, 기업의 이익에는 50%의 세율을 유지했다. 책은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세금 개혁'을 세금제도 개악의 시발점으로 본다. 이를 기점으로 최상위 구간 소득세율이 28%로 뚝 떨어졌다. 그 결과 미국에서 최상위 소득을 올리는 400명에게 고작 23%의 소득세율이 부과됐다. 이로 인해 성장이 둔화되고 분배 또한 악화됐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최고 소득구간에 대해 압류에 가까운 세금을 매기던 1946년부터 1980년까지 국민소득 평균은 해마다 2%씩 상승했지만, 세율을 대폭 인하한 1980년 이래 한 해 평균 1.4% 성장에 머물더니 21세기 들어서는 0.8%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책은 연 50만달러(5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상위 1% 부자들에게 60%의 평균 소득세율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방소득세뿐 아니라, 주(州) 소득세, 급여세·판매세 등을 통합한 것이다. 또 조세 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기업의 이익을 빼돌리고 세금을 떼먹는 다국적 기업에는 국제 협력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제공조를 통해 다국적 기업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자회사를 두고 영업하든 25%의 실질세율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 내용은 흥미롭지만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으니 참고해서 보는 게 좋겠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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