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은 화성, 女는 금성에서 왔다?..모두 지구인일 뿐

강영운 2021. 4. 9.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젠더 모자이크 / 다프나 조엘, 루바 비칸스키 지음 / 김혜림 옮김 / 한빛비즈 펴냄 / 1만 6500원
고대 로마에서는 고환을 가장 고귀한 신체기관으로 여겼다. 그것이 없는 여성은 하등한 존재로 폄훼됐다. 과학이 자리를 잡은 근대사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조지 로메인스는 1887년 "여성은 두뇌가 작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미흡하다"고 적었다.

편견은 현대사회까지 이어진다. 지난 세기 가장 큰 히트를 친 작품의 제목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과학자들은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섹스에 관심이 많다' '여성은 예민하고 감성적이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여자와 남자를 다른 존재로 여기는 인식론의 역사는 유구하다.

'젠더 모자이크'는 이 같은 생각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남자와 여자의 두뇌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두뇌에 다른 점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환경 차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두뇌에는 생식기가 없다는 것이다.

다프나 조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신경과학과 교수는 1400명의 두뇌를 연구했다. "뇌의 한 영역을 남자에서 여자로 '성 전환'하는 데 30분의 스트레스 자극이면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를 본 뒤였다.

다프나 교수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분석한 결과 두뇌가 성별로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가 남성성과 여성성이 섞인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근육질 남성에게서는 여성성이, 요조 숙녀에게서도 남성성이 발견됐다.

사회와 언론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그 반대 연구 결과는 단신에 그친다. 1995년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가 그 예다. 예일대 연구자들이 여성 19명과 남성 19명을 대상으로 글자 인식, 단어 분류, 운율 맞추기 실험을 차례로 진행했다. 두 실험에서 성별 간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 운율 맞추기에서 성별 간에 뇌 활성화 영역이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여성과 남성은 두뇌를 다르게 사용한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후 수많은 연구가 남녀 두뇌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이분법은 수많은 경계인을 낳는다. 사회가 강조하는 이분법적 젠더 질서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은 주입되기 마련이다. 젠더 질서에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들은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저자는 '젠더 프리' 사회를 꿈꾼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분야가 개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녀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은 "백인과 흑인이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과 논리가 같다.

선진국에서는 젠더 프리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대형 유통체인은 2015년부터 장난감의 성별 표시를 없앴다. 영국에서는 '그냥 장난감이 되게 해주세요(Let toys be toys)' 캠페인이 시작됐다. 성평등이 정착된 스웨덴은 정형화된 젠더 양식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han), 그녀(hon)라는 대명사 대신 젠더 중성 대명사 'hen'을 표기한다. 언어에 편견이 깃든다는 이유에서다.

더타임스는 "남성이 화성에서 왔다면, 여성도 화성에서 왔다"고 찬사를 보냈다. 여자와 남자 이전에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