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립박물관 "노예제 반성"..교재 발간

김정기 2021. 4. 9. 15: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전국 7~8학년 학생들에게 노예제 반성 출판물 배부

40만 명 노예가 있었던 퀴라소에도 보급해

인종차별의 근본에는 노예제가 있다는 점 알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네덜란드 국립박물관(Rijksmuseum)은 지난 3월 23일 노예제도를 반성하는 '노예 그리고 오늘'(Slavernij En Nu)이라는 교재를 발간했다. 이 책은 네덜란드 전국에 보급됐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국립박물관이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에도 참여할 수 있다. 


노예사 교육교재를 발행한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은 교재에서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할 때까지,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것입니다"라며 노예제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인종차별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6세의 한국계 네덜란드인 남학생이 "뭘 봐? 이 코로나 걸린 암 덩어리 중국인아"라는 언어폭력과 함께 심각한 물리적 폭력까지 당해 네덜란드와 국내에 큰 충격을 줬다. 최근 네덜란드 내 아시아권 사람들의 인종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아시안 보이스 유럽(Asian Voice Europe)'이라는 비영리단체가 설립된 것도 네덜란드 내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교재는 단순히 네덜란드인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한 번 상기시키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이 교재는 네덜란드 내 모든  7-8학년 학생들(한국 기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연령대)및 약 40만 명의 노예가 착취당했던 네덜란드령 퀴라소의 학생들에게 보급된다. 퀴라소에는 여전히 노예의 후예들이 해방되어 살아가고 있다.


노예무역이 시작된 17세기부터 노예제가 폐지된 1863년까지 약 200년간 약 60만 명에 가까운 노예거래가 있었다. 노예들은 수리남과 같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늦게 노예들을 해방시킨 축에 속한다. 1848년도 토르베커 내각이 들어선 이후 노예해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1863년에 1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법이 시행되었다. 1873년이 되어서야 모든 노예가 해방됐다.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이 발행한 노예제 반성 출판물 표지 ©출판사에서 공개한 e-book 캡처


책은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가장 첫 내용은 수리남 커피 플랜트 농장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티라라로 불리는 아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아이가 어떤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지, 수리남의 다른 백인 아이와 어떤 다른 살을 살고 차별받는지, 아이가 그리는 부정적인 미래에 대해서, 자신의 노예 친구가 어떻게 수리남에 오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아이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후에는 주로 해방된 노예들의 후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들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싣고 있다.


퀴라소에서 네덜란드로 공부하러 온 사비타(18)는 책에서 퀴라소의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자 하는 꿈을 들려주고, 퀴라소에서 이민 온 밀로우스카는 이름의 성을 없애버린 노예제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책은 네덜란드의 노예제도를 옹호한 장소나 노예들의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진 명소들을 지도와 함께 어두운 색으로 소개한다. 또한 네덜란드인과 결혼하려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된 인도네시아인 스라와티, 네덜란드의 노동자들을 돕다 재판도 없이 감옥에 투옥된 수리남 출신 안톤 등의 이야기를 전하며  네덜란드인들의 노예 해방 이후 이어진 인종차별에 대해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책은 부끄러운 네덜란드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노예제를 운영하던 네덜란드인들과 다르게 노예제에 저항한 자유의 투사들을 기억하길 촉구한다. 책은 학생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추천한다.


"인종차별은 모두 노예제도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부유합니다. 그리고 그 부는 노예를 통해서 또한 왔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전 세계로 노예들을 이송했습니다. 항상 노예제도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로 불의한 것에 대항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오스터 공원에 설치된 노예들을 기념하는 조각상 ©Arthena


노예제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에 네덜란드 역사가들은 침묵하지 않고, 모든 청소년이 인종차별의 뿌리인 노예제를 맞닥뜨리고 반성하길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노예제의 최대 피해지역이라 할 수 있는 퀴라소의 학생들에게는 네덜란드의 선택이 퀴라소를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퀴라소의 저항정신은 길이 남아야 할 유산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네덜란드 캄펜 = 김정기 글로벌 리포터 kjgwow@gmail.com


■ 필자 소개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 박사과정


Copyright © E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