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깨부수면 신들이 머물 곳이 없다

나경희 기자 2021. 4. 9. 12: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주 성산읍에 있는 수산초등학교는 귤밭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마음껏 귤을 먹을 수 있도록 한 마을 주민이 기부한 귤밭이다.

"제주에 이런 할망당이 많아요. 근데 이렇게 잘 보존된 곳이 거의 없대요. 이런 이야기만 모으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그는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수산초등학교도, 귤밭도, 진안할망당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처음, 신화〉
한진오 지음
한그루 펴냄

제주 성산읍에 있는 수산초등학교는 귤밭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마음껏 귤을 먹을 수 있도록 한 마을 주민이 기부한 귤밭이다. 운동장과 맞닿아 있는 이 귤밭이 끝나는 지점에는 ‘진안할망당’이 있다.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마을에서 성을 쌓을 때 한 과부만 공출을 내지 못했다. 관리가 재촉하자 과부는 홧김에 “아무것도 없으니 아이라도 데려가라”라고 했다. 그 뒤로 이유 없이 자꾸 성이 무너져 내렸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스님이 “그때 과부가 준다던 아이를 바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를 제물로 바치자 더 이상 성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밤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원혼을 달래는 굿을 열고 아이를 진안할망으로 모셨다.’

진안할망당 전설을 이야기해주던 근처 무밭 농부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제주에 이런 할망당이 많아요. 근데 이렇게 잘 보존된 곳이 거의 없대요. 이런 이야기만 모으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그는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수산초등학교도, 귤밭도, 진안할망당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만 모으는 사람’ 한진오 작가가 제주 곳곳에 녹아 있는 신화와 전설, 민담을 모아 정리한 자료다.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질 풍경들도 점점이 박혀 있다. 한진오 작가는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한다. “다리 놓기를 거부한 여신은 변신을 통해 제주섬으로 화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섬이 된 여신은 뭍과 다른 제주, 자신의 신성이 고스란히 담긴 제주, 자신의 육신인 제주를 훼손하지 말라는 계시를 남긴 것이다.” 오랫동안 제주 신화와 굿 문화를 연구해온 그의 염려는 수산리 농부의 한탄과 겹쳐 들린다. “이렇게 모든 것을 깨부수고 난 뒤에 무엇을 자랑할 것이며 어디에 신들이 머문다고 자랑할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