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빛으로, 건축적 공간이 감각적 공간으로..박영훈 작품전
[경향신문]
·갤러리마리 초대전 ‘BLACK INTO LIGHT’
·독특한 재료·작업 과정·조형성으로 다양한 경험 선사
그의 작품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병원에서나 보는 예리한 의료용 핀셋들이 놓여 있다. 작업과정에 필수적인 도구다. 전시장 벽에 내걸린 작품들과 핀셋이 무슨 상관일까 관람객들은 궁금해진다. 관람객들의 작품감상 자세도 갖가지다. 가까이, 멀리, 이리저리 오가고 고개를 상하좌우로 기울이며 뜯어본다. 캔버스 평면작업인데 “어떻게 된 거야”하며 색다른 경험을 한다.
자세히 보면 화면 위에 수많은 점들이 있다. 크고 작고 형태도 다양하다. 점이 1만개가 넘는 작품들도 있다. 그 점들은 부조처럼 도드라져 저마다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작품에서 멀어질 수록 화면은 그저 색 덩어리가 된다. 어렴풋한 형상들도 나타난다. 점들의 독립성은 사라지고 하나로 어우러져 색면으로 다가온다. 화면에서 더 멀어지면 이젠 색이 빛으로 전환되는 듯하다. 약한 조명 아래서도 화면이 발광체처럼 빛을 낸다. 보는 시선 방향에 따라 다양한 변화도 느껴진다.
중견의 박영훈 작가가 개인전 ‘BLACK INTO LIGHT’를 갤러리 마리(서울 경희궁로)에서 특별초대전으로 열고 있다. 신작을 중심으로 평면작업 28점을 비롯, 미디어 설치·입체 등 모두 30여점이 출품됐다.
보는 이에게 특이한 경험을 안기는 ‘한강’ 시리즈 등의 평면작업은 사실 지극히 노동집약적 작업의 결과다. 화면 위의 그 많은 점들을 작가가 직접 ‘붙인다’. 점의 재료는 물감이 아니라 반무광의 컬러 알루미늄이다. 워낙 작게 잘린 다양한 색의 알루미늄 조각이라 의료용 핀셋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무광 투명 우레탄 도장을 한다. 알루미늄 조각이 물감이고, 핀셋은 붓인 셈이다.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문다. 붙이기 과정은 노동력과 더불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수행자적 자세가 필요하다. 디지털 세계를 상징하는 픽셀을 떠올리게 하는 점, 즉 조각들을 작가는 극히 아날로그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관람객이 느끼는 다양한 체험은 독특한 재료, 수행자적 작업과정, 나아가 작가의 독특한 조형성에서 비롯된다. 김웅기 평론가는 “거리에 따라 작은 입자들이 구성·배치되는 시각적 자극에서 점차 색으로, 급기야 빛으로 형태가 사라지는 놀라움을 체험할 수 있다”며 “그의 작품이 부리는 미술적 효과로 갤러리의 건축적 공간은 색 속에서 물질이 사라지는 감각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고 말한다.
감각적으로 전환되는 전시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빛과 색의 오묘한 조화와 그 관계, 나아가 평면과 입체, 시각과 지각, 디지털과 아날로그, 물질과 비물질 등의 관계까지 사유하게 된다. 전시는 23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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