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가장 소외된 곳을 환히 밝혀주신 따뜻한 가슴 잊지 않겠습니다

기자 2021. 4. 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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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때를 알고 피어나는 봄꽃들로 온 세상이 향기롭다.

운전하다가 창문을 열면 분홍색 벚꽃 잎들이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당시 내 휴게실은 취사장 한쪽 벽면을 합판 하나로 막은 창문조차 없는 곳이어서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했고 늘 습기와 하수구 냄새로 가득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취사장은 부대 내에서 매우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외된 곳이라며 일찍 신경 써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해 하시던 대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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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섭 대대장님

저마다 때를 알고 피어나는 봄꽃들로 온 세상이 향기롭다. 운전하다가 창문을 열면 분홍색 벚꽃 잎들이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사람은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이맘때면 소리 없이 피어나는 꽃들처럼 떠오르는 고마운 분이 있다. 심봉섭 대대장님, 그분을 처음 뵌 것도 지금처럼 벚꽃이 만개했던 때로 내가 군부대 민간 조리원으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민간조리원의 임무는 군 급식의 질을 향상시키고 조리병들의 조리와 위생을 지도, 감독하는 일이다. 한식과 중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투력의 기본이 되는 급양을 담당하는 일선에서의 일은 체력적으로도 엄청난 소모전이었고 요즘 신세대 조리병들을 지도하며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 보니 그중 튀는 조리병 한 명이 취사장 일을 정말 힘들게도 했고, 나름 국가 자격증을 가진 군무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데 비해 복지에 관한 부분은 매우 열악했다.

당시 내 휴게실은 취사장 한쪽 벽면을 합판 하나로 막은 창문조차 없는 곳이어서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했고 늘 습기와 하수구 냄새로 가득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조리병들이 내 휴게실을 감옥이라 부를 정도였으니 나는 일을 그만둬야 할지, 더 인내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사장을 둘러보던 심 대대장님께 고충을 이야기했더니 물품 보관소로 쓰던 두 평 남짓한 공간을 비우고 곧바로 휴게실을 옮겨주셨다. 작지만 창문이 있어 햇볕도 들고 푸른 나뭇잎들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때의 감사함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루하루 출근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던지….

취사장은 부대 내에서 매우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외된 곳이라며 일찍 신경 써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해 하시던 대대장님. 전역을 앞둔 병사들과 어울려 축구공도 차고, 매일 뜨거운 불 앞에서 땀 흘리는 조리병들을 일부러 데리고 나가 밥도 사주시던 대대장님. 명절이면 잊지 않고 핸드크림과 한과를 챙겨주시던 대대장님. 그런 가슴 따뜻한 지휘관 밑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었는데 심 대대장님은 임기를 마친 후,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말을 하시고는 전출을 가셨다. 보통은 몇 날 며칠을 대대장 이취임식 연습으로 부대 안이 분주한데 심 대대장님은 병사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이취임식도 생략하고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가던 가을날 소리도 없이 훌쩍 부대를 떠나셨다. 육사나 학사 장교 출신이 아닌 일반 병에서부터 시작해 장교가 되셨다는(이후에 용사들에게 들은) 대대장님은 그래서 더욱더 소외되고 어려운 곳에 귀를 열고 마음을 써주셨던 것 같다.

봄날처럼 맑고 따뜻한 심 대대장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가장 소외된 곳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긍심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조용히 나를 다잡아본다.

오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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