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쾌락은 짧고 역사는 영원"..'정신적 가치' 남긴 中 불멸의 9인

기자 2021. 4.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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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시간의 압력 | 샤리쥔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굴원·이백·사마천 삶 파헤쳐

인간 위대하게 하는‘忠’증명

굴원, 정치가 망가지는 시대에

목숨 던지며 명시 ‘이소’ 남겨

조조, 피비린내 나는 들판 지나

죽어서 ‘문왕’이 되는 길 꿈꿔

“물질주의가 넘실거리는 대양에서 고개를 들고 대지를, 하늘을, 역사를, 미래를 바라보라!”

‘시간의 압력’의 마지막 문장이다. 물질적 쾌락의 시간은 짧디짧고 대지와 하늘, 역사와 미래의 시간은 길디길다. 두 시간 사이에 시시한 것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압력이 생겨난다. 불후(不朽)와 불멸(不滅),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이 압력을 버티고 견뎌 역사의 진주로 바뀌는가. “살기등등하고 핏빛 가득한” 세상에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재미를 추구하는 해충”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으로 위대한 인격을 갖추고 밖으로 세상을 구제하는 열혈 선비(烈士)로 남는가.

샤리쥔(夏立君)은 상앙, 이사, 굴원, 이릉, 사마천, 조조, 이백, 도연명, 하완순 등 아홉 사람의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한다. 전국시대에서 명청 교체기에 이르는 긴 시간 속에서 저자는 충(忠)이라는 고상한 가치를 다룬다. 굴원은 초나라가 망할 때 강물에 몸을 던졌고, 하완순은 명나라가 망할 때 열일곱 어린 나이에 형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 다 패배가 확정된 절망에도 도모를 멈추지 않았는데, 절묘한 시문을 남김으로써 드높은 언어가 비천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렸다.

작가는 두 가지 충을 보여준다. 한쪽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영웅의 충이 있고, 다른 쪽엔 인간을 개로 만드는 노예의 충이 있다. 전자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현세 너머의 고상함에 바치는 충이고, 후자는 한 인간이나 한 가문에 목매달면서 던져진 뼈다귀나 갈구하는 충이다. 저자는 노예의 충을 비첩(婢妾) 의식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비첩 의식이 있으나, 이에 매이지 않고 더 높은 정신을 창조해 낸다.

굴원은 군주는 우매하고 나라는 위태로운데 당파가 창궐해 나날이 정치가 망가지는 현실을 살았다. “나라에는 정해진 영토가 없고, 사인(士人)에게는 정해진 군주가 없는” 시대를 살았기에 굴원이 나라를 옮기는 건 흠결이나 수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굴원은 초나라 산하에 목숨을 던져 넣는 쪽을 택하는 한편, ‘이소(離騷)’ 등 명시를 남겨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세상이 혼탁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인심은 말할 수 없구나. 죽음을 사양할 수 없음을 아나니/ 바라건대 이 몸을 애석하게 여기지 말아야지.” 이로써 세상이 타락해도 홀로 진실을 지킬 수 있고 천지가 기뻐해도 홀로 슬퍼할 수 있는 고독한 내면이 탄생했다. 굴원과 함께 인간은 시공의 곤경 탓에 생기는 개인적 슬픔 안에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깊이를 불어넣는 서정의 언어를 알았다. 이로써 무력한 패배자 굴원은 “웅장하고 위대한 문학의 시공”에서 이름을 이어가게 됐다.

조조는 평생 “피비린내 나는 황량한 들판”을 걸었다. “백골은 들판에 드러나 있고/ 천 리에 닭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는 백성은 백에 하나,/ 그걸 생각하면 애간장 끊어진다.”(‘만리행’) 조조는 살육주의가 횡행하는 세계를 견디고 이겨서 한 걸음 더 걸으면 황제가 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조는 “살아서 주공(周公)이 되고, 죽어서 문왕(文王)이 되는 길”을 꿈꾸었다. 후대에 선양의 형식으로 나라를 넘겨받음으로써 주 문왕처럼 “성인이자 성왕”이 되려 했다. 황제만 바랐던 동탁, 유비, 손권 등과는 격이 달랐다. 조조 내면에는 냉혹한 현실을 헤쳐가는 정치가와 도덕적 고결함을 추구하는 유학자, 죽을 때 처첩 살림까지 챙기는 온유한 시인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후대 황제들은 폭력으로 제위를 찬탈하는 이리들보다 천하도 구하고 정신의 기치도 보전하기를 바랐던 조조를 더 두려워했다. 황제 권력이 약해질수록 은근히 제위를 빼앗는 일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져서 남송 이후 위대한 인간 조조는 속임수 쓰는 음험한 불한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백은 스스로 시적 재능보다 정치에 더 재능이 있다고 여겼다. 당 현종은 홀연히 떠오르는 영감을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내는 이 비범한 시인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일을 맡겼다가 곧바로 내쳤다. 광오한 자유를 추구하는 이백의 심성이 정치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는 황금을 하사해 이백을 내보냈다. 이 우아한 처분 덕분에 이백은 영감을 시로 표현하고 몸으로 사는 개성을 죽을 때까지 누렸다. 머리는 비첩 의식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시는 어린아이다운 자유를 잃지 않은 것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고/ 느긋하게 남산을 바라본다.” 도연명은 중국 문화에 전원혼(田園魂)을 불어넣었다. 벼슬길에서 얻은 것이 별로 없었던 그는 마흔한 살에 전원에 은거해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삶에서 느끼는 심사를 시로 승화해 폭정의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이상향, 즉 도화원(桃花源)을 발명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도연명과 함께 인류는 아무리 거친 현실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정신의 고향을 얻었다. 이처럼 샤오쥔은 현재의 쾌락에 굴복해 조만간 닳아 없어질 당파나 군주에 ‘어리석은 충’을 던지는 무감각한 현실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정신의 가치에 충을 바침으로써 시간의 압력을 이겨낸 인물들에 환한 빛을 던진다.

일찍이 사마천은 ‘사기’를 써서 한 인간의 일생 이야기(傳)가 문학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시간의 압력’에서 샤리쥔은 영웅재사들이 시대의 험악함을 견디면서 이룩한 심오한 사유와 풍부한 정서, 지극한 인간성을 살려냄으로써 좋은 글은 늘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책이 루쉰 문학상, 린위탕 산문상, 종산 문학상 같은 중국의 대표적 문학상을 휩쓴 것이 어색하지 않다. 문장은 아름답고 활달해서 읽는 맛이 넘치고, 지성은 단단하고 통찰이 넘쳐 풍부한 영감을 준다. 수백 개의 각주를 달아 수시로 나오는 인물과 전고를 해설해 준 번역자의 노고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했다. 512쪽, 2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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