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1. 4. 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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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잉그리트 폰 욀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휴머니스트 | 272쪽 | 1만6000원

“나는 피로 출발해 피로 물든 전쟁의 아이, 독일아이였다. 우리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정직하려고, 떳떳하려고 몸부림친 한 세대의 이야기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그의 책 <뿌리내림>에서 “단연코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가 경험하는 가장 위험한 병폐”라고 썼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는 시몬 베유가 ‘인간 영혼의 욕구’라고 했던 삶의 뿌리, 그 흐트러진 정체성의 조각을 찾아 분투해온 한 여성의 이야기다. 저자 잉그리트 폰 욀하펜(80)은 책 첫 문장에서부터 “이 이야기 곳곳에는 피가 흐른다”고 경고한다. “나는 ‘총통께 아이를 바치’는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순수 아리안 혈통을 지키고 우수 인종을 길러 아리아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레벤스보른(Lebensborn)은 ‘생명의 샘’을 뜻하는 고대 게르만어로, ‘좋은 피’에 대한 나치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점령지 아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납치 범죄로 이어졌다. 욀하펜은 나치의 이런 인종 실험을 위해 납치된 ‘레벤스보른의 아이’였다.

‘에리카 마트코’라는 이름이 쓰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잉그리트 폰 욀하펜. 휴머니스트 제공
‘히틀러에게 바쳐질 아이’로 분류돼
독일인으로 살아온 유고 출생 여인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피해자로서
정체성 말살시킨 나치 범죄 고발
“인종주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전후 독일에서 성장한 그는 10세 되던 해 건강보험증에 적힌 자신의 원래 이름이 ‘에리카 마트코’이며, 부모의 친딸이 아닌 위탁아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고아가 양산된 전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생에 대해 묻지 못한 채 살아간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도 10여년이 흐른 58세가 되던 해, 친부모를 찾고 싶냐는 독일 적십자사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동안 “과거에서 무얼 발견하게 될지 두려워 문제를 회피”했음을 알게 된 그는 60세 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하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지워진 과거와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이 있다. 바로 독일뿐 아니라 독일이 침략하고 약탈했던 한 나라의 슬픈 역사를 되짚어 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1942년, 나치가 점령한 유고슬라비아의 도시 첼레에서 부모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아이들에 대한 인종검사가 이뤄진다. 파란 눈과 금발 등 이른바 ‘순수 아리안 혈통’의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은 ‘총통에게 바칠 아이’로 선발돼 독일로 보내졌다. 나치 친위대원이나 인종심사를 통과한 독일인 가정에 이 아이들이 맡겨진다. 히틀러 정권의 2인자 하인리히 힘러가 직접 관리한 이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가운데 생후 9개월이었던 에리카 마트코가 있었다.

레벤스보른에서 열린 명명식 제단 앞에 우수 혈통으로 뽑혀 누워 있는 아기, 1942년 8월 첼레에서 군인들이 아이들을 빼앗아가는 모습과 아이들이 인종검사를 기다리는 모습(왼쪽부터). 휴머니스트 제공

레벤스보른은 전후 독일에서 숨겨야 할 수치스러운 과거였기에, 기록을 찾는 일도 증언을 듣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고향 유고슬라비아는 이미 여러 나라로 쪼개져 사라졌고 각국 정부와 기록보관소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거부됐다. 15년에 걸친 노력 끝에 그는 조금씩 흩어졌던 퍼즐을 맞춰간다. 그리고 길러준 어머니의 서류함 속에서 뒤늦게 발견한 서류 한 장, 거기에 쓰인 ‘독일화를 위해 뽑힌 아이’란 말의 뜻을 차차 이해하게 된다.

히틀러가 집권한 1930년대 독일 인구는 감소하고 있었다. ‘순수 독일인’의 출산은 장려됐고, 미혼 여성들의 비밀을 보장하고 안전한 출산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레벤스보른이 탄생했다. 외관상 복지시설이었지만, 나치가 신봉한 우생학에 기반해 ‘우수 혈통’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히틀러 정권은 엄격한 인종심사를 거쳐 선발한 친위대와 순수 아리안 혈통 여성들의 성적 결합·출산을 장려했고, 더 나아가 점령지 각지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이른바 ‘좋은 혈통’을 걸러냈다. 그들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히틀러 천년제국을 이끌 순수 독일인으로 길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의 위탁 증서에 쓰여 있던 ‘독일화’였다. 그들에게 ‘좋은 피’가 있다면 ‘나쁜 피’도 있었다. 순수 혈통의 지배 인종을 ‘창조’하려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열등 인종’을 절멸하겠다는 홀로코스트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책은 한 여성이 지워진 자신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자 침묵과 수치심에 가려져 있던 전쟁범죄에 대한 고발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여정에서 자신과 같은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을 만난다.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난, 나치의 뒤틀린 신념에 의해 선발된 이 ‘순수 아리아인’들의 이야기는 참담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깊은 상처와 수치심이었다. “저는 살해자들의 편에서 자랐어요. 레벤스보른 아이라는 것은 여전히 수치심의 원천이죠.”

저자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까지의 혼란과 절망, 수치와 안도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다. 길고 험난한 여정 끝에 자신이 “한때 유고슬라비아 출신 에리카 마트코였고, 독일인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었다. 둘 다 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피’로 인해 자신의 삶은 시작부터 뿌리뽑혔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가족이란 뿌리를 찾게 되지만 결국 ‘피’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언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70여년 전 지나간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왜곡된 신념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특히 유럽에서, 한때 철의 장막에 둘러싸였던 나라들에서 정치인들은 민족주의를 만지작거리며 인종적·역사적 열등성을 토대로 한 증오에 불을 붙인다”고 지적한다. “1945년 이래 유럽이, 그리고 세계가 이토록 위험하게 분열된 적이 없다.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배워야 할 때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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