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벌면서 덜 내는 비상식적 세상, 제대로 돌려놓자 [책과 삶]

이혜인 기자 2021. 4. 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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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 360쪽 | 1만9800원

월급쟁이는 매달 꼬박꼬박 일정 비율의 세금을 자동적으로 내지만, 다국적 대기업은 내야 할 세금의 비율을 역외 조세회피 기법을 통해 대폭 낮추기도 한다. 구글은 세계 최고 IT 기업이라는 명성만큼 조세회피 기업으로도 악명이 높다. 구글의 조세회피 기법은 ‘더블 아이리시 위드 더치 샌드위치’로 알려져 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세율이 낮거나 세금이 아예 없는 조세회피처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아일랜드(아이리시)에 해외 법인을 만들고, 네덜란드(더치)에 세운 자회사와의 송금을 통해 세금을 줄였다. 이 같은 방식으로 구글은 2017년 약 6%의 법인세율(당시 미국 법인세율 35%)만을 적용받으며, 한 해에만 세금 십수조원을 절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더 많이 버는 집단이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일도 발생한다. 책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는 미국 전체 인구를 소득 구간에 따라 15개 집단으로 나눠 소득세율을 계산한 결과를 소개했다. 저자들은 각 그룹이 낸 세금을 세전 소득으로 나눠 소득세율을 계산했다. 2018년 기준으로 소득집단 각각의 소득세율은 25~30%가량이었다. 하지만 최상위층 ‘슈퍼리치’들의 소득세율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책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 최상위층에 있는 ‘슈퍼리치’들은 평균적인 집단보다 실질적으로 더 낮은 소득세율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부자들의 소득 중 많은 항목이 면세 항목으로 빠지는 데다 기업의 법인세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 등으로 인해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적은 세금을 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91% 달한 미 슈퍼리치 소득세
레이건 정부 때 28%까지 인하
경제 활기에 낙수효과 장담했지만
이후 수십년 동안 불평등만 심화

돈을 더 많이 벌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을 보면 더 많이 버는 기업과 개인이 오히려 더 적은 세금을 낸다. 미국의 조세 제도는 일부 누진적으로 설계됐을지라도 전체를 놓고 보면 역진적이다.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경제학 교수 이매뉴얼 사에즈와 게이브리얼 저크먼은 경제적 불평등과 조세 제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이들은 1900년대 초반부터 약 한 세기 동안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에서 낸 모든 세금 데이터와 미국 다국적기업이 해외 지사에서 벌어들인 장부상 기록 등을 모두 모아 분석했다. 저자들은 “1970년대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은 모든 세금을 통틀어 소득의 50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있었”으나, 2018년에는 “지난 100년 이래 처음으로 억만장자들이 철강 노동자, 교사, 퇴직자들보다 세금을 덜 내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왜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이 실질적으로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일이 발생하는가. 책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원인으로 짚는다. 첫째, 슈퍼리치들의 소득 중 많은 항목이 면세 항목이다. 페이스북 대주주인 마크 저커버그의 경우 페이스북 영업이익이 늘어 그가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이를 환매하기 전에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설사 환매하더라도 이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가 근로소득세보다는 세율이 훨씬 낮다. 둘째, 슈퍼리치들이 내는 세금 가운데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법인세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18년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에서 21%로 뚝 떨어졌다. 셋째, 자본소득에 부과되는 세율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노동소득(임금)에 부과되는 세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근로소득의 경우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이 37%인 데 반해, 사업소득은 최상위 구간 세율이 29.6%에 불과하다.

“미국의 조세 체계를 망가뜨린 폭발물의 구성 성분은 단순하다. 자본소득을, 다양한 층위에서, 면세 소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부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성격 덕분에 여러 측면에서 혜택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큰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슈퍼리치들이 이 경쟁에서 압도적인 승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네덜란드·싱가포르·바하마 등
조세회피처로 활용된 ‘버뮬랜드’
근로소득 세율은 점점 높아지는데
사업소득 세율은 낮추는 각 정부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한 역외 조세회피는 슈퍼리치들이 합법적 탈세를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다국적기업들은 회사의 이익이 네덜란드, 싱가포르, 케이맨제도, 바하마 등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에서 발생한다고 신고하는 방식으로 그 지역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책에서는 이 지역들을 ‘버뮬랜드(Bermuland)’라고 칭하는데, 버뮬랜드에서 미국 다국적기업이 올린 수익은 2016년 기준으로 영국, 일본, 프랑스, 멕시코에서 발생한 수익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저자들은 각 국가가 조세 수입을 올리기 위해 “주권국가의 주권을 상품화”함으로써, 기업들의 탈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조세 제도가 과거에도 이렇게 불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1930~1980년대 미국의 부자들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받았다. 이 기간 동안 미국 내 소득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은 78%였다. 특히 1951년부터 1963년까지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은 무려 91%에 달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 주요국들 사이에는 세금의 누진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독일, 스웨덴, 일본은 1870~1880년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비상수단과 더불어 누진적인 소득세를 도입했다. 미국은 소득세의 누진율을 신속하게 높였다. “1913년 미국 최상위 소득 구간의 세율은 7%였지만, 1917년 초에는 67%에 달했다. 그때까지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도 부유층에게 그토록 무거운 세금을 물려본 적이 없었다. … (이 같은 흐름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대두한 지적, 정치적 변화의 산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1933~1945년 재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누진적 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그는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부자가 무한정 돈을 버는 사회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4월27일 의회 연설에서 “매우 낮은 소득과 매우 높은 소득 사이의 격차는 반드시 완화되어야 할 것”이라며 “미국 시민이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모든 세금을 내고 난 후에는 연 2만5000달러 이상을 벌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세 제도의 흐름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반전됐다. 1986년 최상위 소득 구간에서 최대 90%까지 적용되던 세율이 28% 선으로 뚝 떨어지는 세금개혁법이 통과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간의 조세 체계가 “비미국적”이라며 “현행 세법의 가파른 누진율은 개인의 경제적 활기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레이건 대통령 이후로도 미국의 정치·경제·지식 엘리트들이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경제적 활기’를 북돋고, 트리클 다운(부의 낙수효과)이 가능하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세 제도가 불평등하게 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에 대한 조세 부담을 경감시켜 준다는 것은, 소득 중 큰 부분을 자본을 통해 얻는 부유한 이들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뒷받침해 준다는 말과 같다. … 상위 1%가 소유하고 있는 부의 비중은 1980년대 말 22%였지만, 2018년 현재 38%로 폭증했다. 반면 하위 90%에 속하는 이들이 소유한 부는 같은 기간 40%에서 27%로 줄어들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몇십년간 트리클 다운은 없었고,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불평등은 심화했다.

‘억만장자가 세금을 더 내게 하려면’
두 경제학자가 제시한 불평등 해법
결국 투표하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그렇다면 그들(슈퍼리치)이 나보다 ‘더’ 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최상위층의 평균 세율을 현재 30%에서 60% 수준으로 두 배 정도 높이고, 부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이들에게 누진적인 부유세를 매기는 것을 주요 해법으로 제시한다. 또 납세 수단을 다양화해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세금을 내게 하는 방법까지도 생각하자고 한다. 희망적이지만, 동시에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들이 제시한 해법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책을 다 읽은 후에 지금의 조세 제도를 어떻게 바꿔나가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조세 정책의 변화는 대중들이 어느 날 불현듯 부자들의 짐을 덜어주겠노라고 마음을 먹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세금 문제에서 불의가 승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숙고하고 투표하여 결정을 내리고 응답해야 할 일이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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