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40억달러 번 저커버그, 그가 낸 소득세는 '0'

나윤석 기자 2021. 4. 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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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페이스북 지분 20% 달하지만

배당 안받아 과세대상서 제외

조세회피처 활용 법인세도 ‘0’

부자들 왜곡된 조세체계 고발

“세금인하가 근로자 임금상승?

성장 둔화시키고 분배 나빠져”

“30년간 ‘법인세 바닥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주요 20개국(G20)과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을 논의하겠다.”

지난 5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 주최 행사에서 한 말이다. 다국적기업 유치를 위한 법인세 인하 경쟁에서 벗어나 충분한 세수 마련이 가능한 조세 제도 확립에 힘을 모으자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 아래 나온 이 발언은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들이 쓴 책은 ‘슈퍼리치’의 국경을 넘나드는 탈세 행각, 억만장자가 평범한 노동자보다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왜곡된 조세 체계의 실상을 고발한다. 저자들은 “세율 인하 경쟁은 훔치는 자와 빼앗기는 자만 있는 제로섬게임”이라며 누진적 소득세와 부유세 등을 통해 불평등을 극복하고 국제적 공조체제를 구축해 탈세를 무력화하자고 강조한다.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게 없는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방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다. 저자들은 1913년부터 한 세기에 걸친 통계를 취합해 미국의 최빈곤층과 중산층·부유층이 얼마의 세금을 내는지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가계 소득 조사와 소득세 환급 내역뿐 아니라 애플·페이스북 등 다국적기업이 해외 지사에서 벌어들인 장부 기록까지 뒤져 분석에 활용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의 최고 부자 400명에 부과된 소득세율은 23%인데 반해 하위 50%의 노동계급은 25%다. “도널드 트럼프 일가, 마크 저커버그, 워런 버핏 등이 그들의 비서보다 낮은 세율로 소득세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술·담배·식료품 등에 붙는 ‘역진적 소비세’,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우호적인 조세 체계 등이 ‘가난한 미국인에게 무거운 세금을 짊어지게 하는 원흉’이라고 꼬집는다.

이와 함께 협소한 소득세 과세 범위, 조세회피처를 활용한 탈세 등도 문제로 지목한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저커버그가 납부한 세금 내역은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60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그는 2018년 한 해 동안 40억 달러의 소득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페이스북이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는데,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식의 20%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배당을 전혀 하지 않은 탓에 40억 달러 중 단 1달러도 소득세 과세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럼 페이스북의 법인세는 어떨까. 현재 이 회사는 영업이익의 출처를 카리브해에 있는 케이맨 제도의 법인으로 돌려놓았는데 이 지역의 법인세율은 ‘0’이다. 세계 최고 갑부가 ‘합법적’으로 내는 세금은 거의 한 푼도 없는 셈이다. 책은 페이스북뿐 아니라 화이자·씨티그룹·나이키·피아트 등 분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거대 기업과 부유층의 조세회피에 대해 “절세가 폭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탈세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다국적기업이 자국 외의 국가에서 얻는 이익의 40%는 조세 회피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책은 미국 조세정책의 역사도 자세히 훑는다. 미국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반세기 동안 최고 소득구간의 세율이 사실상 압류에 가까운 90%에 달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누진세율’을 갖고 있던 나라였다. 법인 이익에 대해서도 50%의 세율을 유지했다. 이런 기조는 1980년대 ‘작은 정부’를 표방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권력을 쥐면서 확연히 바뀌었다. 레이건 정부는 “세금이란 무의미한 지출이자 합법화된 도둑질”이라며 최상위 가군 소득세율을 28%로 대폭 낮추는 세법 개정을 단행했다.

그렇다면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 인하가 경제 활력을 높이고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유도한다는 보수 정치인과 학자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1980년까지 해마다 2%씩 올랐던 국민소득은 세율을 끌어내린 1980년대 평균 1.4% 상승에 머물더니 21세기 들어서는 0.8%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약 40년간 연평균 0.1%의 소득성장률을 보인 하위 50%와 달리 상위 0.1%는 320%, 상위 0.01%는 430%나 소득이 뛰어올랐다. 저자들은 “부자들의 소득이 노동계급에 ‘낙수효과’를 가져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낮은 세율은 성장의 둔화를 불러왔고 분배 또한 악화시켰다”고 말한다. 책은 공정한 조세 체계 확립을 위한 방안으로 누진적 소득세 복원과 부유세 도입 등을 제안한다. 또 조세회피 방지 차원에서 다국적기업이 어느 국가에 자회사를 두고 영업하든 최소 25%의 법인세를 부담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는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애플이 저지섬에서 2%의 세율로 세금을 냈다면 미국이 나머지 23%를 걷어가자는 것이다.

저자들의 모든 주장에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다. 최고 소득구간의 실효세율을 60%로 끌어올리자는 제안은 과거 역사를 고려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부자’와 ‘빈자’를 갈라 서술하는 대목은 지나치게 선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의롭지 못한 조세정책”이 초래한 불평등의 양상을 통계적으로 실증한 저자들의 분석은 곱씹을 만한 통찰을 제공한다. 또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기조에도 분배 지표가 갈수록 악화하는 한국에도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360쪽, 1만98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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