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췌장암으로 죽을 고비.. 골프로 아픈 몸 추슬렀죠"

최명식 기자 2021. 4. 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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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훈 전 일도산업㈜ 대표가 자신이 손수 가꾼 제주 애월읍 집 마당에서 스윙을 연습하고 있다.

고영훈 전 일도산업㈜ 대표

2012년 C형 간염 발병한 뒤

제주서 치료하며 골프 연습

2017년 1월 완치판정 됐지만

그해 4월에 췌장암 발병 충격

수술뒤 가장 먼저 한건 라운드

18홀 마친뒤 응급실로 실려가

“지금 삶은 덤…이웃위해 살것”

고영훈(55) 전 일도산업㈜ 대표는 죽을병에 2번이나 걸리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덤으로 사는 삶이니 어려운 이웃을 더 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클럽에서 고 전 대표를 만났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었기에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가끔 드라이버 샷이 호쾌하게 페어웨이를 가르며 240m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고 전 대표는 “아마 골프가 없었다면 아픈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벌써 제주생활도 7년째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고 전 대표는 2000년 사업을, 2003년 골프를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교통과 안전 시설물을 제조하는 일도산업㈜을 운영하며 돈 버는 재미가 한창일 때 갑자기 건강이 악화했고, 이후 살아야겠다는 절박감에 회사를 모두 정리했다. 고 전 대표는 2014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로 내려왔다. 2012년 C형 간염에 걸렸던 그는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결국 제주로 내려왔다. 일주일에 1번씩 집에서 항바이러스제 주사를 맞았다. 처음 한 달은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집에서 스스로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고통이 상상 이상이었다. 금요일에 주사를 맞으면 주말 이틀은 통증 탓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항바이러스(생백신)를 몸에 넣는 것이라 몸살기가 있는 것처럼 무기력했다. 항암치료보다 더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것.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C형 간염은 상상을 초월한다. 발병 2주 전 지방의 한 병원에서 진통소염제 주사를 맞았다가 감염됐다. 피 묻은 장갑을 낀 간호사가 주사를 놨는데 주삿바늘을 재사용해 혈액 감염된 것으로 추정할 뿐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고 전 대표는 몸이 아팠지만, 제주에서의 골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까지 육상 선수로 활약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육상 꿈나무로 선발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 단거리 부문에서 장재근 씨와 호각을 이룰 정도였다. 그의 100m 달리기 공식기록은 10초8, 비공식은 10초4까지 기록했다. 그는 최근 남자프로 선수 몇몇을 돕고 있다. 골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자신도 운동선수 출신으로서 남자골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돕는 방법이라야 남자 프로에게 일부러 레슨을 받고 그들에게 전지훈련 비용을 대주는 정도다.

지난해 여름, 제주 블랙스톤 골프클럽에서 1오버파 73타를 쳤다. 전반에 1언더파를 치다가 후반에 2타를 잃었다.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다. 2014년 제주로 내려오면서 회원이 된 이래 이전까지는 이 골프장에서 가끔 76∼77타를 쳤다. 그는 제주에서 골프를 즐기기 위해 라온CC, 우리들CC, 핀크스GC 등 여러 곳을 구입해 매일 돌아가며 라운드를 했다.

고 전 대표는 발병 5년 만인 2017년 1월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4월에 췌장암이 발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암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C형 간염 판정 때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당장 수술하자는 의사의 권유에 스스로 정리하겠다며 3개월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그사이 보고 싶은 사람을 제주로 초대해 골프도 치고, 식사도 하고, 가족들과도 이별할 준비를 했다. 수술을 보름 정도 앞두고 혼자 남았을 무렵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러다가 운명을 받아들이자며 체념했다. 이후 마지막으로 서울에 가 가족들과 마지막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로봇수술을 했더니, 회복이 빨랐다. 수술 후 13일 만에 제주로 다시 내려왔다.

그가 수술 후 제주로 내려와 가장 먼저 했던 게 골프였다. 하지만 수술 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장기들이 뒤틀렸다. 라운드 중 통증이 중간중간 있었지만, 일행이 눈치채지 않게 고통을 참고 간신히 18홀을 마친 뒤 쓰러져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서울에서 주치의가 처방약을 항공편으로 급히 보내와 위기를 넘겼다. 이후 2주 동안은 집에만 머물렀다.

그는 지금 췌장암 수술을 한 지 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도 6개월에 1번씩 서울로 가 병원에서 몸 상태를 점검한다. 그가 걸린 암은 10년을 지켜봐야만 완치 판정을 내리는 희귀췌장암이다. 유명인 중 스티브 잡스와 탤런트 김영애 씨도 발병 7년 만에 사망했다. 두 차례 병마와 싸웠던 그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착한 일도 더 많이 했다. 서울에 거주할 때 돈도 많이 벌어 연간 2억 원 넘게 경기지역 불우이웃을 남몰래 10년 이상 도왔다는 사실과 제주 애월읍 소재 불우이웃 기부 사실을 지인이 최근 지역 신문에 제보해 세간에 알려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기저질환자인 그가 행여 감염될까 우려한 지인들은 안부 전화만 자주 할 뿐 제주로 만나러 오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라운드도 코로나19 이전엔 주 3∼4회를 했는데 이젠 1∼2회로 줄었다. 지금은 제주에서 사귄 이웃사촌이나 지인들과 주로 라운드를 하는 편이다.

그는 “골프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신 스트레스 푸는 데는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2번이나 살아남다 보니 앞으로 건강이 회복돼도 사업은 하지 않을 계획이란다. 그는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밥 세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돈만 남기고, 남을 도와주고 보람 있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몇 해 전 집터를 크게 잡았다. 지어놓은 집을 샀고, 소일거리를 겸해 스스로 리모델링을 했다. 지금은 집터를 더 늘려 나무나 꽃 등을 심고 매일 조경하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됐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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