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돌' 첫 여성 출연자 사유리, 그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4. 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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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가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슈돌>은 유명인 아빠가 48시간 동안 육아를 맡으며 일어나는 일을 방영하는 육아·관찰 예능이다. 작년 11월, 결혼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기를 출산한 사유리는 <슈돌> 역사상 첫 ‘엄마’ 출연자다. <슈돌> 측은 “우리 프로그램 제목의 ‘슈퍼맨’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히어로, 영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유리 역시 한 아이를 키우는 슈퍼맨의 길로 들어섰다”며 섭외 의도를 밝혔다.

일부 차별주의자들은 사유리의 육아 예능 출연이 비혼을 부추긴다며 청와대 국민청원과 KBS 시청자 권익센터에 출연 반대 글을 올렸으나,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차별을 정당화하고 현존하는 가족 형태를 부정하는 목소리를 굳이 증폭시켜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보다는, 육아 예능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결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골적이지만, 아기 뺨처럼 보들보들한 감동이 중간중간 끼워져 더 거부하기 어려운 침투에 대해서.

2013년 첫 방송 이래 총 24명의 ‘슈퍼맨’이 등장한 육아·관찰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최근 방송인 사유리가 아들 젠과 함께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유리는 <슈돌> 역사상 첫 ‘엄마’ 출연자로 기대를 모은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육아 예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한국의 가족문화, 차별적인 젠더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 아빠가 하는 육아나 가사의 비일상성을 강조함으로써, 일상적으로 행하는 여성의 노동을 은폐한다는 것,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경으로 시청자에게 위화감을 준다는 것. 여러 육아 예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동의 귀여움을 조미료 삼아 입맛 쫙 당기는 것이 바로 ‘가족애 만능주의’ ‘기승전 가족애’다. 육아 예능 속 이러한 가족애는 언제나 소위 ‘정상 가정’에만 허용된다.

📌 [플랫]‘자발적’ 비혼모 사유리

<이상한 정상 가족>(김희경, 동아시아, 2017)에서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이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특정 형태(주로 4인, 기혼 유자녀 가정)의 가족만을 바람직한 모델로 승인하고 예외는 비정상적이라고 낙인찍는다. 또한 정상 가족의 형태에 집착하고 가족의 가치를 신성시하기에 내부에서 벌어지는 차별이나 억압, 폭력을 은폐한다.

2013년부터 KBS2TV에서 방영된 <슈돌>에는 총 24명의 슈퍼맨과 그보다 많은 아이가 출연했다. 출연진은 모두 남녀 간의 결합과 출산으로 이뤄진 혈연적 공동체고,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졌다. 추성훈과 샘 해밍턴은 언뜻 다양성을 고려한 듯 보이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추성훈은 한국계 일본인이고 샘 해밍턴은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이다).

프로그램은 이들을 ‘대한민국 대표 아빠’로 호명한다. 다정다감하고, 경제적으로 유능하며, 48시간을 통째로 아이에게 내줄 수 있는 노동환경의 성인 남성이 한국 사회의 보편적 아빠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슈퍼맨은 표본집단인 척하는 소수의 예외다. 현실적으로 가정을 멀리하다가 돌아온 아빠는 슈퍼맨보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처럼 불쾌하고 낯선 무언가에 가깝지 않을지…. 그러나 시청자는 별 거부감 없이 이들을 받아들인다. 시청자가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은 주로 경제적인 부분이지, 당연하게 양육자는 ‘엄마’와 ‘아빠’고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육아 예능의 세계관이 아니다. 살갗에 닿는 현실이 어떻든, 그러한 설정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KBS 예능 < 슈퍼맨이 돌아왔다> 의 출연진은 모두 남녀 간의 결합과 출산으로 이뤄진 혈연적 공동체고,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졌다. 추성훈과 샘 해밍턴은 언뜻 다양성을 고려한 듯 보이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상 캡처

<슈돌>을 포함한 여러 육아 예능에서 아빠, 혹은 엄마는 혈연으로 맺어진 자식과 유전적 유사성을 발견하며 감동하고, 자신의 부모를 소환하여 ‘자식 사랑’은 세대 불문 공통의 감정이라고 설파한다. 엄마는 깔끔하고 능숙한 돌봄의 주체(여야 하)고, 아빠는 돌봄이 서툴러도 사랑이 있으니 괜찮다고, 더 나아질 수 있다고 격려받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지거나 그런 감정을 알아가며 ‘성장’한다. 아이를 위해 마련된 최적의 환경이 펼쳐지고, 아이들은 한입에 쏙 넣기 좋은 디저트처럼 귀엽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만 편집된다.

📌 공포에 질린 아이 얼굴이 재밌습니까? 육아 사라지고 산으로 가는 ‘슈돌’

‘노키즈 존’과 같은 차별과 배제는 이 따끈하고 말랑한 세계에서 지워진다. <슈돌>은 48시간이 지나면, <아빠! 어디가?>(MBC)는 여행이 끝나면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는 ‘특수’한 상황이 종료된다. 엄마가 돌아오거나 구성원이 모두 모일 때 비로소 가족이 완성되고 안정을 찾는 내러티브 또한 자주 등장한다. 모든 가치가 집과 가족으로 회귀한다. 감동 코드와 귀여움의 잽을 넋 놓고 맞고 있다가 별안간 진한 가족애 펀치에 쓰러지는 것이다. 으윽, 어쨌든 가족은 이 험한 세상에 유일하게 기댈 만한 최후의 보루라고? 아름답고 온전한 거라고? 세상에는 가족 때문에 피 흘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절대 저런 가정을 꾸릴 수 없는데?!

육아 예능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다룬 연구는 “출산과 육아는 국가적 문제”인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없고 정부와 사회의 역할은 배제한 채 가족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이미지만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사에서 생산해내는 ‘육아는 가정의 책임’ 이미지가 활발하게 소비되는 것은 이미지의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가족 이데올로기에 무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육아 예능은 “나도 ~처럼 ~할 것이다”라는 ‘동일화 갈망’이 강렬하게 작동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메시지나 캐릭터, 라이프스타일은 시청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유리의 출연이 비혼을 부추기고, 비혼 출산을 장려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 ‘동일화 갈망’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결혼 없이도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이 공중파를 타면, 그런 삶을 욕망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지금까지의 육아 예능이 얼마나 세게 정상 가족의 동일화 갈망을 주입했는데?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 가족’은 사실 아주 연약한 환상이다. 증가하는 이혼율, ‘다문화’ 가정의 비율, ‘딩크족’과 1인 가구의 급증 등…. 서울시 기준으로, 2019년 1인 가구 비율은 32%다. 4인 가구는 16.6%다. 더는 4인 가정이 가족 모델의 대표가 될 수 없다(다만 지방은 여전히 4인 가정 체제가 굳건하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사시사철 비혼주의자였던 우리는 출산과 양육에서 의견이 갈렸다. 다양한 형태의 혼외출산을 보고 들은 친구는 말했다. “난 한 번도 그런 식의 출산을 상상도 해본 적 없었거든. 근데…계속 여기서 산다면, 나도 형편이 될 때 아기는 낳고 싶더라.” 무책임한 미혼부의 회피와 국가 정책이 양산하는 ‘피해자’로서의 ‘미혼모’가 아니라, 스스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싱글맘’이 가능했다니? ‘애비 없다’를 최대의 모욕으로 쓰는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선택지였다.

하지만 사유리에게 꾸준히 붙는 라벨처럼 ‘자발적 비혼모’든, 피치 못할 사정의 ‘미혼모’든,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사연이나 배경이 아니다. 특히 가족 형태가 차별과 배제의 원리로 작동하는 세계에서는 더더욱. 개인이 ‘어떻게’ 싱글맘이 되었는지는, 당사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응당 누려야 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무관하다. 국가가 신혼부부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을 해주듯이.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우리 사회가 정상 가족 바깥의 가족을 문제화하는 시선과 차별하는 방식이다.

미디어에서 삭제당하는 ‘정상 가족 이외의 가족’ 역시 엄연한 가족과 시민으로 이 사회에 살아간다. 사유리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린 육아 예능에 새로운 싹을 틔우는 히어로가 될지도 모른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미디어에서 삭제당하는 ‘정상 가족 이외의 가족’ 역시 엄연한 가족과 시민으로 이 사회에 살아간다.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들이 있는데, 그들은 2008~2013년 연재된 웹툰 <일상날개짓>을 초등학생 때부터 무척 좋아했다. <일상날개짓>은 싱글맘 웹툰 작가 나유진(꼬꼬댁씨)이 그린 생활 웹툰이다. 이 웹툰을 보고 자란 동생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싱글맘’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한부모 가정을 둘러싼 차별과 문제점을 인지했으며, 가정의 형태와 무관하게 사랑하는 삶을 발견했다.

다르다는 이유로 지워진 삶을 드러내고, 새로운 가능성과 만나고,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면서 차별과 혐오를 넘어설 기회는 얼마나 귀한가. 사유리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린 육아 예능에 새로운 싹을 틔우는 히어로가 될지도 모른다.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참고 논문
오장근, ‘TV 예능프로그램 속 한국인의 가족 이데올로기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중심으로’, 영상문화, 한국영상문화학회 제25호, 2014.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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