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적자 낸 11번가..국민연금 등에 '역대급' 250억 배당 속내는

이현승 기자 2021. 4.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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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우선주 보유한 국민연금 등에 250억 배당

작년 98억 영업손실…흑자 낸 19년보다 배당금 늘려

"투자자와 협의해 결정"…IPO 불확실성에 주주 달래기

아마존 믿고 간다지만 '빠른 배송' 없인 수익성 확대 어려워

국내 4위 전자상거래 기업 11번가가 작년 1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고도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역대급 배당금을 지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오는 2023년 기업공개(IPO) 여부가 불투명 해 지자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투자자들이 11번가가 약속한 기간내 IPO하지 못할 경우 대주주인 SK텔레콤 지분까지 시장에 동반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있어서다.

11번가 주주현황 및 배당금 추이.

9일 11번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우선주 186만3093주(지분율 18.18%)를 보유한 2대주주 나일홀딩스 유한회사에 지난해 250억원의 현금 배당을 했다. 나일홀딩스는 지난 2018년 SK플래닛에서 독립한 11번가에 5000억원을 투자한 펀드다. 국민연금(3500억원), 새마을금고(500억원)의 자금을 출자받아 사모펀드 H&Q코리아가 조성했다.

배당금 지급은 양측이 맺은 전환상환우선주(RCPS) 계약에 의해 매년 이뤄진다. RCPS는 채권처럼 만기 때가 되면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이 함께 부여된 주식이다. 계약조건에 따라 보통주 전환청구와 상환청구가 둘 다 가능해, FI에게 상당히 유리한 방식의 금융상품이다. 11번가는 나일홀딩스에 RCPS를 발행하면서, 매년 주식 발행금액의 1~6%를 배당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배당액은 11번가가 배당을 실시한 2018년 이후 가장 컸다. 배당금은 2018년 175억원, 2019년 50억원, 작년 250억원이다. 11번가가 2019년에 흑자(영업이익 14억원)를 냈다가 지난해 적자(손실 98억원) 전환한 점을 고려하면 배당금은 오히려 반대로 간 것이다. 11번가의 한 관계자는 "배당금은 투자자와 협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의견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11번가, FI와 드래그얼롱 계약..2023년까지 상장해야

투자은행 업계에선 11번가가 FI와 맺은 '2023년 IPO' 약정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무리한 배당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일홀딩스는 11번가에 지분 투자를 하면서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을 계약에 넣었다.

드래그얼롱이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끌고와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통상 FI들은 투자 기업의 가격 하락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투자 지분을 자유롭게 매각해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11번가의 경우 일정기간 내에 상장하지 못하면 FI가 대주주인 SK텔레콤 지분(80%)까지 함께 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법원에서 드래그얼롱 조항을 위반한 기업과 사모펀드간 소송이 진행되면서 11번가의 부담은 커졌다. FI들이 3년 내 IPO를 전제로 두산인프라코어에 투자했지만 회사측이 이를 지키지 않자 1조원대의 소송을 냈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투자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11번가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입지가 쿠팡에 비해 강력한 편이 아닌데다 2023년 성공적으로 IPO를 하려면 당분간 신규 투자도 필요할 것"이라며 "투자금 회수가 최종 목적인 주주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양측 간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 시장점유율 6%대로 하락...이베이 인수로 IPO 성공 노려

올 초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90조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자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재평가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11번가의 경우 네이버, 쿠팡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쿠팡이 2016년 4%에서 작년 13%로 확대된 반면 11번가는 10%에서 6%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커머스 기업들은 지난해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삼성증권 등에 따르면 11번가 거래액은 10조원으로 전년(8조8000억원)보다 14% 느는데 그쳤다. 쿠팡(21조원)이 전년보다 24% 성장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 증시에 상장하려면 외형 성장이나 흑자 전환이 필수다. 업계는 현재 이커머스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11번가가 2년 안에 이러한 조건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모회사인 SK텔레콤이 쿠팡 다음으로 거래액이 많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G마켓과 옥션을 보유한 이베이코리아는 작년 기준 연간 거래액이 20조원으로 추정되고 국내 이커머스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IPO보다 더 중요한게 합종연횡"이라고 말했다. IPO 전에 몸집을 불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1번가는 아마존과의 전략적 제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커머스 업계에선 이미 쟁쟁한 사업자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시장에 아마존이 적극적으로 진출하려 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탐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외국기업이 직진출하기 쉬운 시장이 아니다"라며 "해외 직구 시장을 확대할 수는 있겠지만 쿠팡처럼 빠른 배송을 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수익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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