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풀어가는 미얀마에 연대를

한겨레 2021. 4. 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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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미얀마) 민중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총탄을 난사하며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버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미얀마에서 적폐의 청산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그들만의 특수성의 폐기"를 위한 투쟁이며 단순한 불복종시위가 아니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치열하게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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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하프와 공작새: 미얀마 현대정치 70년사

장준영 지음/눌민(2017)

버마(미얀마) 민중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총탄을 난사하며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지난 3월27일은 1945년 일본에 맞서 무장 항쟁을 개시한 날로 군부는 이날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삼았다. 군부쿠데타가 일어난 지 55일째가 되던 이날,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와 쿠데타 반대 시위를 벌였고, 이날 하루 동안 1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군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는 것을 너희들도 봤을 테니 이제 정신 차려라.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발표문 제목은 ‘미래를 다스리는 미얀마 청년, 뉴제너레이션들에게’였다. 현재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승려가 주도했던 지난 ‘88시위’와 달리 이른바 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칼로 잔인하게 시위를 진압하는 군경과 이에 맞서는 민중의 시위 소식 중 유독 많은 관심을 끈 뉴스가 있었다. 그것은 시위대가 저지선 앞쪽에 ‘타메인’(Htamain)이라고 하는 여성의 치마를 빨랫줄이나 전깃줄에 매달아 놓아 군경의 진압작전을 지체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남성우위사회였던 버마에서는 빨랫줄에 여성의 옷을 걸 때도 맨 아랫줄에 걸도록 하는데, 이것은 남존여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옷을 걸어놓은 빨랫줄 밑으로 남성이 통과하면 ‘분’(Bhun, 행운·권력 등)을 잃는다는 주술에 가까운 미신을 믿기 때문이다.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규정하면서 에른스트 블로흐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외형적으로만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전근대적 요소가 현대에도 병존하는 현상,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디지털미디어를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술에 가까운 미신이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가 현재의 버마다.

국내 몇 안 되는 버마 전문 연구자인 장준영 선생이 펴낸 <하프와 공작새>는 ‘군부, 이데올로기, 종교’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버마의 정치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미얀마적인 것’을 발견하고 이를 분석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타메인 시위도 ‘미얀마적’이지만, 지난 1988년 8월8일 아침 8시8분에 일어난 이른바 ‘88 버마민주화 시위’도 매우 ‘미얀마적인’ 현상이었다. 1988년 6월 당시 이미 군부정권이 붕괴하였으나 당시 시위지도부는 8월8일을 특별히 상서로운 날이라 하여 정권접수를 미룬 결과, 군부가 쿠데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권력의 공백을 가져왔다.

서구 근대가 내포하고 있는 모더니티의 해방적 속성(계몽)은 세계의 불가사의(마법)를 제거하고, 과학과 실증적 지식을 통해 인간 자신의 자치(자율성)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버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미얀마에서 적폐의 청산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그들만의 특수성의 폐기”를 위한 투쟁이며 단순한 불복종시위가 아니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치열하게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최근 버마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서 남녀의 참가비율이 거의 동등할 정도로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버마의 시민, 청년, 여성 여러분에게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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