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한가운데로 난 길

한겨레 2021. 4. 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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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날 때부터 내장되어 있던 나의 '죽음'을 인식하자 주위의 소중한 이들도 같은 것을 품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상실로 인한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유한자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절대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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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책&생각]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문학동네(2019)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흰머리가 돋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이 들고 있다는 생각,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부터. 그전에도 알고 있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뜬구름 같은 정보였다. 흰머리의 도래와 함께, 그 정보는 가까이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실체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화려한 공연이나 예술작품을 보면 눈물이 났다. 인간이 인간에게, 혹은 동식물에게 정성을 쏟는 광경과 조우해도 눈물이 났다. 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사람, 저 어여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모두 사라지겠지. 언젠가. 끝이 예정되어 있다 생각하니 눈앞의 존재들이 그렇게 찬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가까운 이들을 잃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날 때부터 내장되어 있던 나의 ‘죽음’을 인식하자 주위의 소중한 이들도 같은 것을 품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인간에게 가해지는 가장 크고 무서운 형벌이다. 가까운 이를 잃었을 때 제 감정에 백 퍼센트 충실하면, 남은 이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남은 이들은 생을 이어간다. 아직 생명체 상태를 유지한 이들이 슬픔에만 충실할 수 없도록, 삶의 많은 요소들이 여러 방향에서 끌어당기기에. 그러나 상실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고스란히 남아, 영원히 지고 갈 아픔으로 남는다.

문제는 누구도 이러한 상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 이런 상실을 겪을지 예측할 수 없다. 생로병사라는, 사람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이 개개인의 의지로 관철되지 않기에. 그렇다면 이 무서운 생로병사의 질곡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뺄셈보다는 덧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떨칠 수 없는 슬픔을 떨치려 노력하기보다 삶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는 데에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이러한 덧셈의 윤리학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각각 엄마와 동생과 딸을 잃은 세 사람이 치명적인 상실을 겪은 뒤 살아가는 일상을 그림으로써,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생로병사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상실로 인한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 매 순간 다른 형태와 강도로 되살아나 남은 이들의 일상을 휘저어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다 보면, 견디기 힘든 고통의 한가운데로, 새로운 길이 난다.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이.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기루처럼 화단이 나온다. 발밑에는 여전히 슬픔이 도사리고 있지만,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꽃, 새로운 사랑이 피어나 산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어쩌면 그것은 유한자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절대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슬픔을 딛고 서서 계속 사랑하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알았다. 좋은 이야기는 촉감으로 온다는 것을. 읽는 동안 활자 사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어루만져준 듯, 몸이 훈훈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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