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출, 자막은 가짜..그 관찰예능은 '거짓의 맛'이었나
거짓 논란에 뒤늦게 사과하며 종영 결정
tvN '윤식당2' 3년 만에 '국뽕 자막' 들통
남편은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준 고급차에서 내렸다. 직원 40~50명을 둔 의류 공장의 공동대표라고 했다. 중국 광저우 신혼집과 시부모의 별장은 크고 화려했다. 베트남에 간 시어머니는 “비싸도 상관없다”며 집값이 20억원대에 이르는 990여㎡(300평) 규모의 빌라를 즉흥적으로 구매하려 했다. 아내는 “남편 집안이 재벌은 아니”라면서도 끊임없이 시가의 부를 과시했다. <티브이조선> 관찰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출연해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유명해진 방송인 함소원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아내의 맛> 속 그의 인생이 거짓으로 포장됐다는 것이다. 신혼집은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도 올라온 월세 200만원의 단기 임대 모델하우스고, 시부모 별장으로 나온 곳은 에어비앤비 숙소다. 남편이 타고 다닌 고급차는 지인에게 빌린 것이고, 의류 공장도 남편 소유가 아니란다. 이들은 <휴먼 다큐멘터리―사람이 좋다>(문화방송)에도 출연해 공장 대표로서 남편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모조리 거짓이었단 말인가?
시청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하고, <아내의 맛> 제작진과 함소원에게 진실 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논란이 일자 함소원 부부는 지난달 말 <아내의 맛>에서 자진하차했다. 제작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부부를 출연시켜 방송을 이어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만약 제작진이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방송 조작으로 봐야 한다. 관찰예능의 방송 조작 문제는 방심위에서 다뤄야 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로 시청자 공분을 사는 사례는 또 있다.
<윤식당2>(티브이엔)는 제작진이 외국인의 차별주의적 발언을 칭찬으로 포장한 ‘국뽕 자막’을 내보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2018년 3월19일 방영한 8회 방송에서 이서진, 박서준, 윤여정, 정유미가 스페인 섬 가라치코 마을에서 작은 한식당을 운영하는 장면에서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남성이 이서진과 박서준에게 “여기 두 명의 게이 한국인 남자들이 있네”라고 말한 것을 제작진은 “여기 잘생긴 한국 남자가 있네”로 번역했다. 제작진은 한 독일 여성이 “이 사람들 핫케이크도 잘 못해”라고 한 말을 “이 팬케이크는 정말 잘 만들었어”라고 전혀 다른 뜻으로 바꾸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무조건 칭찬하는 식의 편집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논란이 일자 <티브이엔>은 지난 2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문제의 장면이 담긴 클립 영상을 삭제했다.
프로그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3년 전 본방송이 나간 직후 자막 오류를 인지하고 그 장면을 바로 삭제해 브이오디(VOD)와 재방송은 수정 이후 버전으로 나갔다. 하지만 본방송을 잘라 만드는 클립 영상이 유튜브에 남아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초 문제가 된 장면을 본방송에서 내보낸 것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은 독일어다 보니 바쁘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공식 해명이나 사과 계획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조작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제작진이 즉각적인 해명이나 사과 없이 입을 닫고만 있는 행태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내의 맛> 제작진과 함소원은 취재진의 연이은 요구에 8일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 함소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각종 의혹과 관련해 “맞다. 모두 사실이다”라며 “변명하지 않겠다.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제작진은 “방송 프로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 13일 방송을 끝으로 시즌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과장된 연출이 있었음을 뒤늦게 파악했다”며 명확한 진실 규명은 피해 갔다.
정덕현 평론가는 “그나마 시즌 종료를 한 건 다행이지만, 이 사안을 ‘프라이버시’ 운운하며 함소원 개인의 사적 문제로 치부한 것은 다음에 또 재발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중요한 건 재발 방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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