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없어도 있는 척 하라

한겨레 2021. 4. 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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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온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검증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근사해 보인대도 결과가 늘 좋지는 않다.

바로 "이 아이디어가 성공할지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묻는다"는 방법이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옷을 입고 행차하기'는 성공할 아이디어일까? 임금은 '포커스 그룹'에 미리 물었고, 출시 전 '시장 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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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영감이 온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검증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근사해 보인대도 결과가 늘 좋지는 않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재미도 없는 농담을 왜 한사코 하느냐?” 나는 한숨을 쉬며 답한다. “재미없을 줄 몰랐다.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을 때는 틀림없이 웃길 줄 알았다.” 어디 농담뿐이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미리 알면 얼마나 좋을까? 안 될 줄 미리 알면 시작을 안 할 수 있다. 창작도 연구도 비즈니스도 그러하다. 창작은 일단 연재를 시작하면 중간에 바꾸기 어렵다. 비즈니스는 큰돈이 필요하다. 보통은 남의 돈까지 끌어다 붓기 때문에, 안 될 줄을 미리 알면 여러 사람이 다칠 일을 막을 수 있다.

기뻐하시라. 시작하기도 전에 결과를 헤아릴 방법을 소개하겠다. 원리는 간단하다. 너무 단순해 알고 나면 허탈해하실 것 같다. 바로 “이 아이디어가 성공할지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묻는다”는 방법이다.

하지만 조심하시길. 묻는 방법이 잘못이면 실속 있는 대답을 듣기 어렵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대답만 듣기 일쑤다. 이야기 속 ‘벌거벗은 임금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옷을 입고 행차하기’는 성공할 아이디어일까? 임금은 ‘포커스 그룹’에 미리 물었고, 출시 전 ‘시장 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좋았다. 그런데 결과는 끔찍했다. 어디서 일이 꼬였을까? 물어보는 방법이 문제였다.

알베르토 사보이아라는 사람이 있다. 구글에서 일했고 자기 사업도 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학생도 가르친다. 이 사람이 ‘프리토타이핑’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시제품을 뜻하는 ‘프로토타입’이 아니다. “처음에 내가 생각한 말은 ‘프리텐도타이핑(pretendotyping)’이었다. 하지만 말로나 글로나 어색한 단어였다. 그래서 나는 ‘프리토타이핑’으로 줄였다. ‘(시제품보다) 먼저 온다(pre-)’는 뜻과 ‘(있지도 않은 시제품이 정말 있는) 척한다(pretend)’는 뜻이 결합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값싼 초밥이 나오면 잘 팔리지 않을까? 먹어도 안전하고 값도 싸다면 나는 ‘하루 지난 초밥’도 먹을 것 같아.” 학생들이 밥을 먹다 아이디어를 냈다. “학생들, 그 문제는 프리토타이핑으로 알아볼 수 있어.” 사보이아가 거들었다. 그들은 학생 식당에서 그날 나온 포장 초밥을 사와 “반값, 하루 지난 초밥”이라고 상표만 갈아 붙였다. 있지도 않은 제품이 있는 척한 것이다. 예상과 달리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사보이아는 아이비엠(IBM)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수십 년 전에 아이비엠은 “음성 인식 컴퓨터가 나오면 많이 팔릴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는 음성 인식 기술이 없었다. “아이비엠은 기발한 방법을 썼다.” 이용자가 컴퓨터 앞 마이크로 불러주는 내용을, 타자 치는 사람이 옆방에 숨어 몰래 입력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아이비엠은 꽤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이용자들은 처음에는 정말로 컴퓨터가 말을 알아듣는 줄 알고 신기해했지만, 예상과 달리 몇 시간이 지나자 불편하다며 사용하지 않았다.

창작의 경우라면? 사보이아는 “몇 개의 챕터를 써서 블로그 등에 공개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런데 창작자가 사용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가 다음에 알아볼 ‘피칭’이라는 방법이다.

김태권(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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