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꼬꼬무'가 쏘아올린 탈권위.. 21세기 '사랑방 이야기' 전성시대

양승준 2021. 4.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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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옛날 얘기하듯 ②설교 없이 ③연예인 떼 토크 지양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들여본다. 방송인 유재석이 최연소 체스 국가대표인 김유빈(가운데)씨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 tvN 제공

시청자들이 즐겨 찾는 '이야기 맛집'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엔 두 가지가 없다. 연예인이 떼로 나와 술집 모임에서나 할 법한 선정적인 얘기를 늘어놓지 않고, 전문가가 설교하지 않는다.

집단 혹은 강연 방식에 치우쳤던 TV 토크쇼가 확 달라지고 있다. 보통 사람의 특별한 삶과 역사를 주제로, 코로나19로 2~3명이 소규모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탈바꿈한 게 특징이다.

울퉁불퉁한 삶과 역사의 일면을 ①옛날 얘기하듯 ②위계 없이 나누는 21세기 '사랑방 이야기' 콘셉트로의 변화다. 이 형식은 2000년대 '강심장' '해피투게더' 등 연예인 집단 토크쇼 전성시대를 거쳐 2010년대 중후반 '어쩌다 어른' '차이나는 클라스' 등 전문가 강연 열풍을 지나 새 유행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방송인 장성규(왼쪽)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에서 그룹 엑소 멤버 카이에 12·12사태를 얘기하고 있다. 짜여진 대본은 없다.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준비한 A4용지 30장 분량의 자료를 이야기꾼(장성규)이 미리 읽고, 손님에 옛날 얘기하듯 반말로 들려준다. SBS 제공
반말로 구전동화처럼 듣는 12·12사태... 레트로적 말하기

"정 병장은 후임병과 함께 초소를 지키고 있었어. 새벽 1시 30분쯤 됐을까". 방송인 장도연은 최근 전파를 탄 '꼬꼬무' 시즌2 1회에서 12·12사태를 사랑방에서 옛날 얘기하듯 꺼낸다. '꼬꼬무'는 역사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굵직한 현대사의 사건을 세 이야기꾼(감독 장항준 방송인 장도연 장성규)이 구전동화처럼 전하며 마주 앉아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쉬쉬했던 '그날'의 얘기는 모두 반말로 이뤄지며 빗장을 연다. 특별히 만들어진 세트도 없다. 카페 등 일상의 공간에서 세 이야기꾼은 각기 다른 1명의 청중에게만 집중, 눈을 맞추며 저마다의 기억을 꺼낸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작은 접이식 의자에 쭈그리듯 앉아 단 한 명의 일반인 손님과 마주하는 '유퀴즈'도 비슷하다.

옛 토크쇼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수직적이었다면, '꼬꼬무'와 '유퀴즈'는 수평적이다. 따로 이야기한 뒤 공평하게 편집('꼬꼬무')하고, 회마다 일반인 2~3명을 차례로 주인공('유퀴즈')으로 소개하면서 이야기의 권력화를 경계한다. 특정인에 집중된 발언권의 권력화에 싫증을 느껴 '클럽하우스'를 떠나는 사용자들과 달리 '사랑방 토크쇼'에 시청자들이 몰리는 배경이다. '상명하복'이 아닌 자유롭고 수평적인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의 문화적 특성과 맥을 같이 해 거부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박진규 작가는 "사랑방 소모임 이야기 방식은 MZ세대에겐 레트로(복고풍)적 새로운 재미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주 시청층, 즉 MZ세대의 문화적 배경이 달라지다 보니 연예인의 떼 토크에 예전처럼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연예인 집단 토크 간판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는 지난달 31일 시청률 4.6%(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같은 주 '유퀴즈' '꼬꼬무'보다 낮은 수치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재미 요소가 다양해진 요즘엔 웃음을 위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만으론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며 "트로트 열풍의 반작용으로 오히려 지적인 교양성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스토리텔링형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탈권위적인 스토리텔링형 토크쇼는 요즘 방송가에서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MBC는 시청자가 보내온 괴담을 여러 MC들이 나눠 읽는 콘셉트의 예능 '심야괴담회'를 지난달 처음 내놨고, KBS 케이블채널 Joy는 시청자가 이별의 사연이 담긴 물건을 가져와 사연을 털어놓는 '실연박물관'을 내달 선보인다.

TV뿐 아니라 클럽하우스 등 일상에서도 이야기 사랑방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부동산을 비롯해 음악, 미술을 주제로 한 클럽하우스 모임에 참여한 신기준(20)씨는 "잡다한 지식을 배우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며 교류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킹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클럽하우스 홈 화면에 다양한 주제의 대화방이 떠 있다. 클럽하우스 캡처
코로나가 빼앗은 경험의 공백

긴 이야기에 대한 피로로 블로그에서 페이스북을 거쳐 사진 한 장으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으로 매체 환경이 변한 지 오래인데, 갑자기 왜 '이야기 사랑방'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을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1년 넘게 지속하면서 고립에 대한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픈 욕망의 반영"이라며 "대신 시각적인 피로를 주지 않는 듣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호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꼬꼬무'의 유혜승 PD는 "사람은 경험하면서 성장하는데 코로나19로 경험에 제약이 많아졌다"며 "스토리텔링형 콘텐츠를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간접경험으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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