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9>빚투는 고슴도치가 짊어진 오이일 뿐
가시빽빽한 고슴도치, 씨 많은 오이로 '자손번창'
오이 등 진 고슴도치는 과도한 빚 힘겨운 모습도
빚투 일상 된 요즘세상 옛 어른들 경고 명심해야
[손태호 미술평론가] 얼마 전 동네 식료품점에 갔다가 대파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 단 가격이 거의 만원에 육박하는 가격표를 보니 두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보통 겨울철에 채솟값이 비싸고, 명절 앞뒤로 가격이 오른다는 것쯤은 상식이지만 이미 봄이 왔는데도 이렇게까지 비쌀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겁니다. 옛날 비싼 조기를 밥상 위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술에 조기 한 번 쳐다봤다는 이야기처럼 이제는 라면을 먹을 때도 대파를 매달아 놓고 먹어야 하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립니다.
‘매달아 놓은’ 대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파를 그림으로 그려도 괜찮겠다 싶지 않습니까. 사실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만 해도 채소·과일·꽃 등 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 당연하게 그려졌습니다. 꽃과 새를 주제로 한 그림을 ‘화조도’라고 하는데 그중에는 채소가 등장하는 그림도 적지 않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서도 여러 채소와 과일이 등장하고 심사정·김홍도 등이 남긴 화조도도 제법 많습니다. 그중 17세기 문인화가 욱재 홍진구(출생·사망연도 미상)가 그린 ‘자위부과(刺蝟負瓜·고슴도치가 오이를 진다)가 눈에 띕니다.
장수 축원하는 국화, 관운 기원하는 맨드라미
크고 작은 오이가 바닥에 있으니 오이밭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고슴도치 한 마리가 가시 등에 오이를 하나 얹고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는 주둥이 부분이 앞으로 나와 있고 특유의 가시가 온몸을 덮고 있습니다. 발은 작아 거의 보이지 않고 발가락만 살짝 보입니다. 오이넝쿨 위로는 국화꽃 가지가 삐죽이 올라와 있습니다. 꽃술을 오이꽃, 오이 끝부분과 함께 엷은 노란색으로 표현해 오이와 국화의 생동감을 높였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오이는 점으로 오돌오돌한 질감을 표현했고 왼쪽은 진하고 오른쪽은 엷게 칠해 실제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왼쪽 하단에는 한무더기의 오이 잎과 열매를 배치했는데 오른쪽 상단의 낙관과 균형을 잘 맞췄다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몰골법을 이용한 탄력적인 필치, 감각적인 선염, 산뜻한 설채 등으로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감각 있는 화가의 세련된 작품입니다.
감상하기에 좋은 그림이지만 작품은 단순히 오이와 국화, 고슴도치의 생태와 습성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생각하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오이는 여름작물인데 국화는 가을꽃이니 같은 계절에 함께 보기 어려운 소재입니다. 또한 고슴도치는 잡식성이라 주로 벌레나 도마뱀, 개구리, 채소, 씨앗 등을 골고루 먹지만 오이는 즐기는 먹이가 아닙니다. 그러니 오이를 등에 얹고 가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밖에요.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옛 그림들이 그렇듯이 숨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옛 그림에 등장하는 오이·포도·수박 등 넝쿨식물은 대개 자손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지 끝을 싹둑 자르지 않고 ‘자위부과’처럼 둘둘 말아 길게 그리곤 합니다. 역시 모두 씨가 많은 작물이라 자손번창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수많은 가시로 덮여 있는 고슴도치까지 있으니 목적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길상화’인 것입니다. 국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절개·은일 등의 의미도 있지만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그렸습니다.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짓고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1596)에는 국화차나 국화주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이 늙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화 밑에서 나오는 샘물을 ‘국화수’라 해, 노화를 방지하고 풍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화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던 겁니다.
이렇듯 오이·고슴도치·국화의 상징을 합쳐보니 이 작품은 자손만대 번창하고 오래오래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작가가 누군가에게 장수를 기원하며 그려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낙관은 ‘광복노초’(廣腹老樵)라 적었는데 ‘아랫배가 나와서 뱃살이 두둑한 늙은 나무꾼’이란 뜻으로, 홍진구가 만년에 사용했던 별명입니다. 홍진구는 비록 자세한 생애와 이력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남겨진 그림들을 보면 실력이 만만치 않았던 화가였음이 분명합니다.
고슴도치와 오이가 주인공인 다른 작품 한 점 더 볼까요. 조선후기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1707∼1769)이 그린 ‘고슴도치와 오이’입니다. 역시 오이넝쿨 아래 떨어진 오이가 보입니다. 그중 하나를 고슴도치가 등에 지고 있습니다. 오이넝쿨에는 노란 오이꽃이 피었고 그 위로 잠자리 두 마리가 날고 있습니다. 옆으로는 맨드라미꽃이 피어 있습니다. 심사정의 ‘화훼초충도’ 특유의 맑은 수채화 같은 운치 있는 작품입니다. 오이넝쿨·노란꽃·고슴도치 등은 ‘자위부과’와 동일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국화 대신에 맨드라미가 들어섰고, 잠자리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맨드라미’는 “만들어 놓은 것 같다”라는 순우리말이지만 꽃의 모양이 마치 닭벼슬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자로는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릅니다. 닭‘벼슬’은 관직인 ‘벼슬’과 같은 동음이의어라 그림 속 맨드라미는 관직에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잠자리도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청낭자’ 혹은 ‘청령’이라 불렀는데 이는 젊은 처녀를 뜻합니다. 그래서인지 허준의 ‘동의보감’ ‘내경편’에서는 잠자리를 양기를 강하게 하는 약재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잠자리 역시 오이와 고슴도치와 같은 자손번창을 상징하겠지요.
두 작품 모두 길상화지만 홍진구의 그림이 ‘자손번창과 장수’를 기원한다면 심사정의 그림은 ‘자손번창과 관운’을 기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관직에 진출하고자 했으나 역적의 자손으로 한 번도 나서지 못한 심사정이었기에 자신의 소망을 담아 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슴도치 외 따서 지듯’ ‘외밭에 원수는 고슴도치’ 속담의 교훈
‘자위부과’와 ‘고슴도치와 오이’ 두 작품에서 여전히 의문점 하나가 남습니다. 왜 고슴도치는 오이를 등에 지고 있는 것일까요. 일반적인 생태를 표현한 걸까요, 아니면 의도한 상징일까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고슴도치 외 따서 지듯’이라고요. ‘고슴도치가 오이를 따서 등에 진 듯하다’는 말인데 풀어보면 여기저기 빚을 많이 져 힘겨워한다 혹은 그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또 ‘외밭의 원수는 고슴도치’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슴도치가 욕심을 부려 오이를 여러 개 꽂아 무거워 달아나지 못해 잡힌다’는 뜻입니다. 두 속담 모두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빚에 허덕이는 행태에 대한 경고입니다. 고슴도치가 오이를 등에 진 묘사가 보이면 옛 어른들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라는 충고란 걸 알았습니다. 어찌 보면 화가들은 과도한 빚을 경계하고 가계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자손번창에 필수조건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언론에 나랏빚에 대한 각계의 우려를 담은 뉴스가 많이 보입니다. 전문가들의 가장 큰 걱정은 가계빚입니다. 부동산을 매입하려고 과도한 대출을 받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는 이야기, 고율의 이자로 빚을 내서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에 투자하는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물론 재테크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경제활동입니다. 하지만 큰 빚을 내 투자에 나서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에 가깝습니다. 부의 불균형, 주거불안, 노후불안 등이 무리한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겠지요. 문제는 아무리 원인이 사회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그 결과가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빚투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전 옛 어른들이 오이를 짊어진 고슴도치를 그려두고 과도한 빚을 경계했듯이 말이지요. 그래도 그림자가 있으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길게 뻗은 넝쿨을 보면서 희망도 키워 봅니다. 멀지 않아 우리 서민들 주머니에 오이가 넝쿨째 굴러 들어오길 말입니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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