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국보에 무단침입”… 5㎞ 떨어진 학예사 휴대폰이 울렸다

보령/허윤희 기자 2021. 4. 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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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이 문화재 지킨다… ‘시범사업 1호’ 현장 가보니

“관제센터에서 안내 말씀 드립니다. 안전 거리 밖에서 문화재를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6일 충남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한 관람객이 유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두른 보호막을 넘어가자 경보음과 함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가 계속 석탑 가까이로 다가가자 재촉 방송이 또 나왔다. “문화재 밖으로 빨리 나오세요. 그대로 계시면 경찰 출동합니다.”

같은 시각 보령시청 CCTV 통합관제센터. CCTV 화면 수십 대를 직원들이 지켜보던 중 성주사지 현장이 팝업(작은 화면이 확대되는 것)으로 크게 떴다. 누군가 오층석탑에 접근했다는 위험을 적외선 센서가 감지한 것. 동시에 보령시청 담당 학예사 휴대전화에도 ‘성주사지 경보’ 문자가 울렸다. CCTV나 센서가 불법 침입을 인지해 통합관제센터를 통해 관내 경찰관과 문화재 담당자에게 실시간 상황이 전송되는 시스템이다.

충남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지난 6일 한 관람객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시연을 했더니, 곧바로 경고 방송이 나왔다. /문화재청
보령시 CCTV 통합관제센터. 성주사지 오층석탑에 무단 침입자가 발생하자, 적외선 센서가 위험을 감지해 팝업 화면으로 크게 떴다. /문화재청

보령 성주사지(사적 제307호)는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재청이 사물인터넷(IoT)을 도입한 ‘1호’ 현장이다. 2018년 시범 도입해 4년째 운영 중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폐사지(廢寺址)이지만, 통일신라 학자 최치원의 문장이 남아있는 국보 제8호 ‘낭혜화상탑비’를 비롯해 오층석탑, 삼층석탑 등 국보·보물 5점이 한곳에 모여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허허벌판에 있어 누군가 무단 침입을 해도 빨리 대응할 수 없었다. 1986년에는 돌계단 앞에 있던 사자상 2점을 도난당하고도 한참 지나서야 알아차린 일도 있었다.

이날 기자는 문화재청, 보령시청 관계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며 ‘침입 시연’을 했다. 오층석탑에선 보호막 안에서 손만 흔들어도 적외선 센서가 감지해 경고 방송이 나왔고, 두 차례 경고 방송 후에도 ‘위험’이 계속되자 경찰이 출동했다. 김동현 전주대 문화재방재연구소장은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 보호막 바깥에서 페인트를 뿌려도 이를 감지한다”며 “빗방울을 위험으로 간주하면 안 되기 때문에 면 단위의 물체를 인식할 수 있게 설계가 됐다. 침입 신호를 자동제어장치로 전송하고, 여기서 다시 통합관제센터로 보내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국보 제8호 '낭혜화상탑비'에 설치된 CCTV(왼쪽 위). /문화재청
충남 보령 성주사지를 지키는 라이다(왼쪽). 권역 내 레이더망에 들어온 물체의 움직임을 인식해 관제센터 상황실에 알려준다. /문화재청

사람 출입이 제한된 야간에는 라이다(Lidar) 두 대가 성주사지를 지킨다.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로도 불리는 라이다는 사람의 눈[目]처럼 물체의 형태와 거리까지 인식하는 센서로 450㎡ 권역 내 레이더망에 들어온 물체의 움직임을 인식해 관제센터 상황실에 알려준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서기관은 “문화재 보호 패러다임이 ‘사후 복구’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뀌고 있다”며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는 효율적 시스템”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사물인터넷이 24시간 문화재를 지키는 시스템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문화재를 지키는 시스템이 오히려 경관을 해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사물인터넷 문화재 방재 시스템을 2023년까지 전국 산속이나 오지에 있는 ‘나 홀로 문화재’ 163건으로 확대한다. 올해 충남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보물) 등 18건에 국비 13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보령=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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