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선 구체적 지시가 없다, 내가 찾아서 해내면 그게 내 몸값

김지섭 기자 2021. 4. 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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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t] 글로벌 '혁신 1번지'의 기업문화

“돈(월급)은 주고 일은 시키지 않아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더군요.”

정치 소셜 미디어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의 유호현 대표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트위터와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유 대표는 “일을 찾아서 해야 했고, 프로젝트 내 각종 결정은 상사(上司)가 아닌 내가 해야 했다”며 “처음엔 영 적응이 안 됐다”고 했다. 실무자에겐 상부에 올릴 보고서 작업도 시키지 않았다. 대부분 관리자의 몫이었다. 그는 “직원이 (제대로 일하는지) 통제하거나 감시하지 않는데도 기업이 성장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했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의 이른바 ‘테크 공룡’이 탁월한 혁신과 성장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대규모 자본, 세계 최고의 인재 풀, 그리고 ‘일하는 방식’을 비결로 꼽는다.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가 혁신과 성장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끈질기다.

◇담당 직원이 결정권을 갖는다

한국 기업과 미국 혁신 기업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정권’을 누가 갖느냐에 있다. 한국에선 직원들이 상사 혹은 회사의 구체적 지침에 맞춰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선 구체적 업무 지시를 받는 일이 드물다”면서 “팀에 과제가 주어지면, 매니저와 소통하며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직급과 상관없이 자신이 최종 결정을 할 때도 잦다. CEO(최고경영자)가 “별로”라고 해도, 이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 대표는 “한국에선 CEO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좌우되지만, 실리콘밸리에선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 직원 개개인의 몫”이라고 했다. 기획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임원이나 CEO에게 공(功)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되어 ‘몸값’을 높여준다. 유 대표는 “위에서 결정해 주지 않으니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가 없다”며 “그만큼 성과에 대해 승진이나 성과급 등 보상이 따르니 일에 대한 동기 부여도 된다”고 했다.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기업 드롭박스는 “당신은 똑똑하다,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원칙을 직원들에게 자주 상기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정권이 직원에게 있는 만큼 일하는 과정에서도 자율성을 부여받는다. 넷플릭스는 출장비 등의 각종 경비 지출이나, 휴가와 관련한 구체적 규정을 두지 않는다. “회사(넷플릭스)의 이익에 부합되게 행동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전부다.

◇오너십과 비전이 근로 의욕 높여

직원들은 업무 자율성과 결정권을 보장받음으로써 ‘나도 회사의 주인’이라는 오너십(ownership·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승차 공유 업체 우버의 직원들이 주 80시간 이상 자발적으로 일하는 배경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다. 직원 각각이 사업 책임자라는 의식이 강하고, 회사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권한과 책임, 보상이 늘어난다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비전(vision)’은 직원의 오너십을 강화한다. 기업이 어떤 가치에 부합하는 구체적 ‘비전’을 갖고 창업했다면, 직원들도 이에 공감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자아실현 같은 의미를 찾곤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비전은 ‘액자 속의 죽어 있는 문구’가 아니다”라며 “비전에 공감하고 비전을 행동 원칙으로 내재화한 직원들은 일할 때 자연스럽게 기업의 비전과 개인의 목표를 일치시킨다”고 했다.

회사가 비전을 중시하다 보니 CEO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편이다. 국내 모바일 금융 플랫폼(서비스) ‘토스’에서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박토니 리더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직원 수천 명이 모인 타운홀 미팅에서 신입 직원들이 CEO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미국 월트 디즈니와 승차 공유 업체 리프트(Lyft) 등에서 20년 이상 HR(인사관리)을 담당했다.

◇“인재를 뽑는 것이 육성보다 더 중요”

직원 개개인의 역할이 막중한 만큼, 인재 영입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직원 채용 시 전문성과 역량, 인성 등은 물론 회사 비전에 들어맞는지 개인적 성향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애플과 구글은 인재 1명 채용을 위해 6개월~1년에 걸쳐 10회 이상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론 머스크처럼 CEO가 엔지니어 채용에 직접 나서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인재를 뽑는 것이 육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평판 조회도 세심하게 이뤄진다. 김성남 기업문화 컨설턴트는 “구글은 지원자 이력서가 등록되면 AI가 회사 직원 중 지원자와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근무한 사람을 찾아내 피드백받는 것이 시스템화되어 있다”고 했다. 전반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실리콘밸리에선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증명해야 취업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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