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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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무오류성(가톨릭에선 ‘교황 무류성)’을 비판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93)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가 6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스위스 루체른 출신인 큉 교수는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4년 천주교 사제품을 받았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소장 신학자로서 자문그룹에 참여하면서부터. 요한 23세 교황이 시작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의 현대화·토착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그와 함께 활동한 소장 신학자이자 ‘절친’이 독일 출신 요제프 라칭거 신부였다. 라칭거 신부는 훗날 베네딕토 16세(94) 교황이 됐다. 두 사람은 당시로선 개혁파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유럽을 휩쓴 이른바 ’68혁명'을 계기로 극명하게 운명이 갈렸다. 라칭거 신부는 무신론이 휩쓰는 학생혁명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오히려 정통 가톨릭 교리 수호에 나섰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 시절 교리의 최후 수호자 격인 교황청 신앙교리성(省) 장관을 지냈다. 반면 큉 교수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비판하는 등 기성 가톨릭과 마찰을 빚었다. 사제 결혼, 여성 사제 서품, 피임, 낙태, 이혼 등 문제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또 정교회, 개신교와 이슬람, 불교 등 다른 종교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큉 교수는 그렇지만 교황 제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결국 1979년 교황청은 그에게 신학교수 자격을 박탈했지만 가톨릭 사제직은 유지하도록 했다.
2005년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2016년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 무류성에 대한 토론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서신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도 ‘교회란 무엇인가’ ‘가톨릭의 역사’ ‘왜 나는 아직도 기독교를 믿는가’ 등 큉 교수의 저서가 번역·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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